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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해와 편견의 역사는 그를 ‘姦雄’으로 분칠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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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07-25 | VIEW : 2,7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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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와 편견의 역사는 그를 ‘姦雄’으로 분칠했다
난세의 영웅 조조(曹操)
최용범
조조 연표
155년 중상시 조등의 양자로 태위(총리)의 자리에까지 오른 조숭의 아들로 출생.
174년 효렴에 추천되어 낙양의 북부위(수도 북부 치안책임자)에 취임. 엄격한 법률 집행으로 명성을 떨침.
181년 환관들에 의해 살해된 진번과 두무의 억울함을 진언하는 등 반환관파 활동.
184년 황건의 난 일어남. 기도위로서 황보숭과 주준을 따라 황건적과 전투, 승리를 거둠. 이 공으로 제남상(相)에 임명됨. 제남상으로 재직하면서 ‘음란한 제사’를 금하고, 부패관리를 다수 파면하는 등 개혁적 면모 보임.
189년 소제를 폐위하고 헌제를 옹립하는 등 무력으로 전횡을 일삼던 동탁에 대항하는 의병을 일으킴.
190년 지리멸렬한 반동탁 연합군의 행태에 반발, 독립적으로 동탁군의 부장 서영과 싸웠으나 패배.
191년 원소의 추천으로 동군태수에 취임.
192년 흑산적과 흉노를 격파. 연주목으로 부임. 황건 대군과 싸워 승리, 30만명의 병졸과 100만명의 남녀를 부하로 거둠. 군사적 기반 마련.
193년 원술군을 크게 격파. 부친 조숭 낭야에 머무르다 도겸의 별장에서 살해됨.
194년 도겸 편을 든 유비와 전투, 여포와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연주를 빼앗김.
195년 정도에서 여포 격파
196년 조조 최대의 정치적 기반이 된 헌제를 허창(허도)으로 모시고 사공이 됨.
197년 원술군의 장수에게 크게 패함.
198년 원술군의 장수를 크게 이겨 설욕함. 동쪽으로 여포군 격파하고 처형함.
200년 동승 등이 주도한 황제 가담 반조조 쿠데타 진압. 관도대전에서 원소군 대파.
204년 하북 일대 평정함.
208년 승상에 취임. 장판전투에서 유비군 격파, 적벽대전에서 손권·유비 연합군에 패함.
210년 구현령(求賢令)을 내려 품행에 구애받지 말고 재능 있는 이는 모두 추천할 것을 명함.
213년 40만 대군으로 손권 공격, 위공으로 책봉되어 ‘구석’을 하사받음.
216년 위공에서 위왕으로 작위가 올려짐.
217년 손권을 공격, 항복받음
219년 한중에서 유비와 전투, ‘계륵’ 포기하고 철수. 다시 손권과 함께 관우 공격.
220년 낙양에서 병사.
"삼국지”의 영웅들이 활약했던 후한(後漢) 말에는 지금 봐도 재미있는 모임이 있었다. 바로 ‘월단평’(月旦評)이란 것이다. 월단(月旦)이란 매월 1일을 말한다. 당시 인물평론으로 세상에 알려진 허소(許召力)란 인물이 그의 사촌형인 허정과 함께 매월 1일 이 사람 저 사람에 대한 인물평을 하는 모임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월간 인물평론” 편집위원회쯤으로 봐도 무방하겠다.
이 모임의 주간인 허소에게 한 사나이가 찾아와 인물평을 요청했다. 웬만한 ‘급’의 명사가 아니면 거론하기를 꺼리는 허소는 잠자코 있었다. 그러나 그 사나이는 거듭 자신의 인물감정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허소는 이 사나이를 보고, “그대는 태평한 세상에서는 유능한 신하일 것이고, 난세를 만나서는 간웅(姦雄)이 될 것일세”(子治世之能臣, 亂世之姦雄也)라고 평했다. 이 말을 들은 그 사나이는 크게 웃었다. ‘치세의 능신이요, 난세의 간웅.’ 독자들은 금세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렇다. 이 사나이가 바로 삼국지 최고의 영웅으로 꼽히는 조조(曹操)다. 잔혹무비와 권모술수의 대가로 이미지화된 조조를 표현하는 문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이미지화된 문구와 다른 동시대의 표현이 있다. 그것도 이 고사와 얽혀 있다. 당시 조조에게 허소를 찾아가 인물평을 받아 보라고 했던 이는 교현이었다. 교현은 태위(도지사급)를 거쳐 태중대부까지 지낸 고관 출신으로 벼슬에 있을 때 강직하고 과단성이 있었다고 한다. 더욱이 청렴결백해 자신과 가까운 인물들에게는 제후의 작위를 주지도 않았다. 그가 죽었을 때는 집안이 가난하여 빈소(殯所)를 차릴 공간조차 없었다. 당시 사람들이 명신(名臣)이라고 칭찬할 만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한기(漢紀)>
그런 고명한 인물이 청년 조조를 평하기를 “장차 천하가 어지러워질 테니 하늘의 명(命)을 타고난 재목이 아니면 세상을 구해내지 못할 것인즉, 능히 세상을 바로잡을 인물은 그대뿐일세”<위서(魏書)>라고 평하며 “그대는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으니 허자장(許子將:許召力)과 교분을 갖도록 하게”라고 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장안의 저널리스트에게 인정받아 활동기반을 닦아 놓으라는 구체적인 출세(出世)의 지침까지 주었을 정도로 일찍부터 조조를 큰인물로 봤던 것이다.
관용과 용인술의 대가
당대 최고의 인물이 20세 안팎의 젊은이에게 세상을 구할 것을 기대했던 것은 조조의 인물 됨됨이가 크기도 했겠지만, 그 시기가 워낙 영웅을 갈망할 만큼 난세이기도 했다. 교현과 같은 시대의 인물로 당시 청의파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하옹 역시 조조를 가리켜 “한나라의 황실이 망하게 되면 천하를 안정시킬 사람은 반드시 이 사람(조조)”이라고까지 했다. 조조에 대한 인물평이자, 한제국 말기의 혼란상을 잡아줄 인물에 대한 기대를 표현한 말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까지 ‘역사가상인터뷰’ 코너에 등장한 인물인 진시황·궁예·이등박문 중 조조는 그래도 역사의 분칠이 가장 많이 벗겨진 인물이다. 현대에 와서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평가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의 분칠과 유교적 사관을 벗어나, 사서(史書)에 입각해 조조를 객관적이고도 공정하게 보고자 하는 쪽이 주류를 이루고 있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웅’(姦雄) 두 글자 중 아무래도 ‘姦’쪽에 대중적 이미지가 실리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직도 조조 하면 ‘권모술수’와 ‘잔혹무비’한 인간상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조조는 잔혹무비보다 ‘관용’의 용인술에 능한 리더였고, 단기간의 권모술수보다 집권 이후 통일제국의 건설을 위해 20여년간 대의명분과 국가기반을 쌓아 나갔던 전략가였다. 평생을 쉬지 않고 공부해 “손자병법주”를 비롯한 숱한 병서를 저술한 군사학자이자, 호활한 시편을 자랑했던 건안시단을 이끈 시인이었다. 끊임없는 전쟁으로 피폐했던 나라 살림과 군웅의 할거, 그리고 구제국의 잔존이란 조건을 고려해 본다면 조조는 중국사를 통틀어 최고의 정치가이자 전략가, 그리고 말 그대로 걸물로 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중국사에 사통팔달한 일본의 중국계 역사소설가 진순신이 표현한 대로 조조는 ‘영웅 중의 영웅’이다.
기자는 조조를 그가 죽기 1주일 전 병상에서 만났다. 바로 3주전 조조는 오나라 손권으로부터 관우의 머리를 받고 정중히 장례를 치러준 바 있다. 20년전 조조가 군웅간의 패권쟁탈전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하는 계기가 되었던 원소와의 관도싸움에서 관우는 조조를 돕지 않았던가. 무한한 애정과 관대함을 보였던 그 관우의 목을 보았을 때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무상, 그것일 게다. 그러나 조조는 유언을 마친 상태이기도 하고, 임종을 앞둔 심경을 시로도 쓴 뒤였지만 왕으로서의 업무는 계속 보고 있었다. 꼿꼿했다.
조조와의 첫인사는 생략하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 왕께서는 사후 1,000년간 악인의 대명사가 되리라는 것을 예상했습니까?
“그래요? 허허…. 적과 동지가 하루 아침에 갈리고, 합종연횡이 종횡무진으로 전개되는 이 격란의 시대에 ‘선’과 ‘악’이라…. 그래도 나 조조는 다른 인물들에 비해 두드러진 악행을 해본 적은 없다고 생각하오.”
조조가 악인으로 낙인찍힌 대표적 에피소드는 동탁이 임명한 벼슬을 거절한 채 낙양에서 도망치는 길에 지기인 여백사의 집에 들렀다가 자식을 비롯, 여덟명의 집안사람들을 살해했다고 “삼국지연의”에 기록된 ‘여백사 사건’이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 일행이 여백사의 집에서 요리를 하기 위해 칼을 가는 소리를 듣고 자신을 죽이려는 것으로 오해해 집안 사람들을 다 죽이고 도중에 만난 여백사까지 죽인 것으로 돼 있다.
― 아무래도 여백사의 사건 탓이 큰 것 같습니다.
“아니, 그것 때문에 말이오? 도둑이 들끓던 시기에 나를 몰라본 여백사의 자식과 하인들이 말과 짐을 빼앗으려고 해서 죽였던 것뿐이오. 이 시기에는 그런 집이 많았소. 무법천지 세상 아니었소?”
―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삼국지연의”란 후세의 소설이 세상에 널리 퍼졌는데, 이 소설의 작가 나관중은 왕을 서촉왕 유비와 대비해 악인으로 낙인찍었습니다. 유비는 덕의 화신으로 그리지요.
“그래요? 소설이라 하니 뭐라고 말하기는 뭐하오만, 선생께서 보기에는 나와 유비 중 누가 더 많은 배반을 했겠소?”
기자로서는 뭐라 말하기 어려웠다. 어쨌든 이미지로 봐서는 조조일 것 같은데….
“유비가 동맹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이 누구였소. 나를 포함해 공손찬·도겸·원소·유표·손권·거기에다 여포와도 동맹을 맺었소. 게다가 거의 유비가 먼저 의탁했던 경우가 많소. 그러나 나중에는 이들과 모두 반목하지요. 명분이야 못 붙이겠소? 거기에다 나에게 항복한 여포가 ‘저의 무예로써 섬기겠다’고 했을 때 죽여야 한다고 말한 이가 유비 아니었소? 허허….”
― 그래도 유비는 한나라 중흥의 기치를 내걸어 정통성 하나는 있지 않았습니까. 한 황실의 후손이라고도 하고….
“유비가 자신을 전한(前漢) 경제의 아들인 중산정왕 유승의 후예라고 하는데, 유승으로부터 유비의 할아버지 유웅에 이르는 200년의 가계는 완전히 밝혀진 것이 없소. 게다가 태어났을 때는 짚신이나 돗자리를 짜 팔아 생업으로 했던 한미한 집안 아니었소? 그 조상을 근거로 한조 부흥의 기치를 내걸었던 것은 정말 날조 아닙니까? 그것도 제대로 지킨 것도 아닙니다. 그랬다면 한나라 황실의 원수인 동탁을 무찌를 어떤 태세라도 갖추고 있어야 하지 않겠소? 영토의 확장에 얽매여 한나라 황실 부흥 따위는 염두에도 없던 인물이오. 내가 위왕에 오르자, 얼른 그 자신도 멋대로 한중왕이라 칭하지 않았소?”
“삼국지연의”는 조조를 악인으로 묘사
조조의 항변은 옳은 바가 많다. 조조가 죽은 뒤 그 아들 조비가 헌제를 폐하고 황제의 자리에 앉자 유비 역시 늦었다는 듯 제위에 오르지 않았던가? 더구나 유비는 자신의 즉위가 대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간하는 신하를 화가 나서 좌천시킨 바도 있다.
― 왕께서 오늘의 우위를 점한 비결을 들라면 가장 먼저 무엇을 들겠습니까?
“허, 아직도 강동의 손권과 서촉의 유비를 멸하지 못하고, 언제 도발해 올지 모르는데…. 우위가 있다면 얼마나 있겠소? 그래도 내 조그만 성공의 비결이라면 사람을 가장 중히 쓴 것을 들겠소.”
사람이라…. 인덕이라면 유비 아니던가? 그 무섭고 엄한 조조가 사람을 성공의 요인으로 들다니…. 어쨌든 그의 말을 계속 들어 보자.
“내가 사람을 뽑아 쓰는 단 하나의 기준은 실력이었소. 학문이 얕은 아전이라도 뛰어난 재주와 특이한 자질을 갖춰 장수로서 맡은 임무를 다할 수 있는 사람, 이름을 더럽히고 부끄러운 일을 저질렀거나 어질고 효성스럽지 못하더라도 나라를 다스리고 군사를 움직이는 전략과 전술에 뛰어난 자가 있으면 언제든 뽑았소. 나라가 잘 다스려지는 평화로울 때는 인품을 높이 사야겠지만, 어지러운 혼란기에는 무엇보다 싸움에서의 공로와 능력을 중시해야만 하오. 그래도 이 마당에 이러쿵 저러쿵 떠드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마치 대롱 구멍으로 호랑이를 들여다보는 짓과 다름없지 않겠소?”
시대상황을 보면서 임용의 기준을 세우는 조조의 이러한 논리는 지금 상황에서도 명쾌하기만 하다. 여담이지만 YS 때나 지금의 DJ 정권에 와서도 능력과 임무에 따른 인재의 배치가 아닌 정치적 상황논리, 혹은 그보다 못하게 측근세력의 세싸움 결과로 인사가 결정되는 데서 국정의 혼란이 야기되지 않았던가.
“조조병법”(바다출판사)의 저자 유동환씨는 조조의 이러한 인재등용 원칙에 따라 조조 진영의 숱한 명장들이 발탁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장수 우금은 황건군 토벌에 강집된 평민, 장군 악진은 지방의 일개 서기 출신이었고, 장군 장패는 도적 출신에 여포의 추종자, 장수 포덕은 마등·마초·장로에 이르기까지 자기가 모시던 주군을 바꾼 인물이었다. 그후 조조에게 항복하고 나서는 충성심을 바꾸는 일 없이 관우와 싸우다 목숨을 잃었다.
선비 홀대 평가는 오해에서 비롯
조조가 사람과 그의 재능을 사랑한 예는 부지기수다. 그의 조부와 아버지까지 욕하는 격문을 썼던 진림을 문장력을 보고 거두어들인 사실이 그 한 예다. 그리고 집단적 사면을 내리기까지 한 것은 유명한 일이다. 원소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자기 군대의 사람들 중 일부가 적진과 내통한 문서를 발견하고 보지도 않고 소각시켰다. 죄를 묻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난세에 강자의 편에 서서 일신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그 시대의 생존의 습성인 이상 용서하겠다는 것이었다. 큰뜻이 없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조조의 이러한 인재등용 원칙은 친족 중심의 손권세력이나 ‘협객(깡패)의 의리’로 뭉친 유비집단에 비해 등용의 폭이나 공정성, 효율성 면에서 앞섰던 것이다. 특히 촉의 경우 도원결의로 맺어진 유비·관우·장비에 비해 뒤늦게 합류한 제갈량 등의 후발 세력은 텃세를 의식하면서 전쟁을 수행해야 했다. 제갈량이 관우와 장비의 자존심을 세워 주기 위해 작전중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장면이 몇차례씩 나오지 않는가? 이런 조조가 종종 선비를 업신여기고, 자신보다 나은 사람은 질투해 죽였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왜일까?
― 왕께서 선비를 쉽게 알고, 질투로 사람을 죽였다는 평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공자의 후손 공융과 재사인 양수를 죽인 일이 많이 거론됩니다.
“글쎄, 나 또한 경전 읽기를 좋아했는데…. 나 자신이 군을 통솔한 지 30년, 그 사이 책을 손에서 떼지 않았소. 낮에는 군사전략을 생각하고 밤에는 유교의 경전이나 주석을 읽고 사색에 힘썼소. 선비를 업신여기지는 않았소. 단지 이치에 합당하지 못하고, 실질적이지 못한 것은 싫어했소. 내가 형주를 점령했을 때 그곳의 주인 유표가 1,000근이 넘는 소를 자랑했는데, 보통 소의 10배는 먹었소. 그런데 짐을 실어 보니 암소만도 못해 차라리 그 소를 잡아 병사들에게 먹였소. 그 편이 낫지 않겠소? 공융도 마찬가지요. 변론에만 능했지, 제도를 잘 정비하기를 하나 전쟁을 잘 하나. 그저 공자의 후손이고 머리가 좋다는 것만 자랑하던 인물 아니오? 청주자사 원담의 공격을 받았을 때는 이미 전쟁중이었소. 전혀 대비하지 않아 휘하의 많은 병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수백명만 남고, 공융은 줄행랑이나 치고 말이오. 도망 직전까지 책만 보거나 담소를 즐기는 것이 고작이었소. 그러면서 전시중에, 그것도 흉년이 들어 금주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문자놀음으로 정책을 비꼬기나 했소. 손권의 사신이 왔을 때 내 욕을 하고 반란을 책동했소. 참을 수 있겠소? 양수는 재기가 있어 아꼈소. 그러나 이 재기를 그저 문자놀음이나 주군의 명령을 빨리 눈치채는 데만 사용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소. ‘계륵사건’만 해도 그렇소. 내가 철군을 마음먹었다 해도 정식 명령이 나야 움직이는 것 아니오? 한중싸움에서 실질적인 계책 제시 없이 내 심중을 알아채고 똑똑한 체나 하는 것이 신하의 도리요? 그리고 양수는 조비·조식 등 내 아들들의 계승다툼에 너무 깊게 개입해 있었소.”
― 왕께서는 세상의 영웅은 유비와 왕뿐이라고 호언한 바 있습니다. 유비의 어느 점이 영웅다운 점이었습니까?
“유비는 사람을 끄는 묘한 힘이 있었어요. 말이 적고, 다른 사람들에게 겸손하며, 희로애락의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았소. 호걸이나 협객과 사귀는 것을 즐기고 자신을 우러러보고 따르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일단 대등한 것처럼 사귀었소. 한 고조와 흡사한 풍모를 가진 인물이었소. 큰뜻을 품고 있고, 도량도 넓어 한 나라를 일으킬 만한 인물이었소.”
“사상으로 읽는 삼국지”의 저자인 오사카대 야마구치 히사쿠치 교수는 유비의 이러한 자질을 카리스마라는 말로 표현할 것을 제안한다. 중국사학자 마부치는 ‘의협적 습속에 기초한 인적 결합관계’라고 부르는, 유비와 관우·제갈량 등 그 주변인물과의 관계는 군신관계를 넘어선 인간적 결속관계가 맺어져 집단적인 힘을 더욱 강화시켰다고 분석한 바 있다.
전쟁은 조조가, 황제위는 조비 품으로
유비는 보통의 인간이 가진 ‘인내력’ ‘포용력’ ‘독립심’ ‘야망’을 훨씬 넘어서는 인간적 자질을 보여줌으로써 카리스마적 존재로 부각됐다는 얘기다. 물론 계략이나 학문적 자질 등에서 조조에게 훨씬 못미치지만, 이를 주변의 뛰어난 인재의 헌신적 충성심으로 보완해 왕의 자리에까지 오른 것이다. 이 점에서 그는 동탁·원소·손권보다 탁월한 능력을 보였고, 그런 의미에서 그는 영웅이라 칭할 만할 것이다. 이를 조조는 일찍이 간파했던 것이 아닌가.
― 손권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손권은 애가 아니오? 촉보다 국력이 부강하나 나갈 뜻이 없는 인물이오. 그의 형 손책이 ‘이 나라를 보존하는 데 힘쓰라’는 유언을 잘 지키는 데 그칠 인물이오. 나에게 항복했으니 촉만 정벌하면 오는 저절로 무너질 것이오. 손권은 한때 옛 오나라의 왕 구천 같은 재주도 있었소. 그런데 손권은 형 손책과 달리 성품이 싫어 꺼리게 하고 살육을 너무 쉽게 했소. 그러다 보니 인재가 가장 적게 갈 수밖에 없었소. 인망이 부족하고 잔악하니 누가 쉽게 가겠소?”
이 대답을 마치고 조조는 몹시 피곤해 했다. 지병인 편두통 때문이었다. 조조는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다. 기자와 만나기 며칠전 조조는 측근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조조답게 사무적인 내용이 주종을 이뤘다. 천하가 안정되지 않았으니 옛 장례 예법을 따르지 말 것. 유체에는 평상복을 입힐 것. 금은보화를 부장하지 말 것. 장례가 끝나면 곧바로 상복을 벗고 직무에 임하도록. 무덤에 봉분을 세우지 말 것. 처첩은 동작대에 머무르게 하고, 할 일이 없는 첩들은 신 만드는 법을 익혀 만들어 팔도록 할 것. 처첩에게 유산으로 향을 주되 제사에는 쓰지 않도록 할 것…. 죽음 뒤의 일처리까지 그는 철저히 유물론적이고 합리적으로 하고자 했다. 당시 손권은 죽음을 앞둔 조조에게 황제의 자리에 오를 것을 청하는 서신을 보냈다. 그러나 조조는 거부했다. 때가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후계자인 조비의 몫으로 남겼다. 반발을 막기 위해서였다. 죽음 직전까지 그는 정치적으로도 치밀한 선택을 한 것이다. 기자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 삼국간의 전쟁으로 숱한 사람이 죽어갔습니다. 70년전 5,600만명이던 중국 인구가 지금은 600만명에 그친다고도 합니다. 10명에 9명이 죽어나간 것입니다. 진정 평화를 이룰 수는 없었습니까?
“어찌 그런 소망이 없었겠소. 나 역시 ‘관리의 성화가 없는 세상, 반백의 중늙은이 짐진 자도 없는 세상, 싸움터를 달리던 말 거둬들여 밭으로 보내고, 죄인이 없어 옥사가 텅 비는’ 그런 세상을 원했소. 내가 30년을 전쟁터를 헤매며 살았는데, 늙어가도록 투구와 갑옷 곁을 떠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것만 생각하는 병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겠소? 그러나 야심에 찬 군웅이 대망을 꿈꾸며 곳곳에 할거하는 시기에는 어쩔 수 없소. 세상의 힘을 한데로 모아 천하통일을 이뤄야 평화가 이뤄지는 것이 지금 시대의 운명이었소. 내 운도 여기까지라 나는 가오만, 그 꿈은 후대에서 이뤄질 것을 믿소.”
숱한 걸물들이 출현해 한 시대를 새롭게 펼쳐보이고자 했던 시대. 조조는 그 한가운데 우뚝 섰다. 그가 죽음을 염두에 두고 쓴 “정렬”(精列)이란 시에서 조조는 그가 되고 싶었던 세 인물을 공개했다.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치수에 성공했던 우임금, 조카인 어린 왕을 대신해 사심없는 섭정을 열정적으로 펼쳤던 그러나 섭정이 끝나기 전까진 누구도 그 무욕을 몰라줘 마음고생이 심했던 주나라 무왕의 동생 주공(周公), 죽을 때까지 현세에서의 온전한 사회질서 구축을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실천했던 공자(孔子), 이 세 사람이었다. 조조는 그 삶의 궤적에 대한 숱한 오해와 편견에도 불구하고 큰뜻을 가진 사람답게 자신이 기준으로 삼았던 인물들에게 어쩌면 조금씩은 다가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시인 조조. 그의 대표작, 적벽전을 앞두고 읊었던 단가행(短歌行)을 다시 음미하며 인터뷰를 마치자. 그에 대한 수다한 평보다 이 시 한 수를 통해 ‘인간 조조’의 체취를 더욱 생생하게 맡을 수 있을 것이다.
短歌行
술잔을 대할 때 노래 불러라
인생살이 그 얼마이냐
아침이슬과 같은 것
지난날의 괴로움은 가버렸네
감개 더욱 무량하여
시름을 잊기 어렵도다
무엇으로 근심을 풀 것인가
오직 술이 있을 뿐이로다
그대의 푸른 깃을
아득히 사모하며
오직 그대 있음으로써
생각에 잠겨 지금에 이르렀다
유유한 사슴의 울음
무리지어 들풀을 뜯는구나
나에게 반가운 손님이 오거든
비파 뜯고 피리를 불어라
휘영청 밝은 달
어느 때인들 안 비추랴
시름은 안에서 이니
끊을 도리를 모르네
논 가운데 길을 돌아다니며
서로 어울려 살아가세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나게 되면
옛 정과 그 은혜 생각하네
달은 밝고 별빛은 스러질 무렵
까막까치는 남으로 날아가네
우거져 겹겹이 서 있는 나무들
의지할 곳이 가히 없구나
산은 흙을 쌓고 쌓아서 높아지고
바다는 물을 넣음으로써 깊다
주공(周公)은 먹은 것을 뱉으니
천하의 인심 모여들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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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伽倻의 왕들은 왜 高地에 묻혔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