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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주역학의 대가 大山 김석진
 관리자  07-25 | VIEW : 4,261
한국 주역학의 대가 大山 김석진

문명의 전환기에 왜 주역인가?

3월31일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김석진선생의 ‘대산주역강의’(한길사) 출간기념 강연회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주역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대산선생은 동양 최대의 철학이라고 불리는 주역의 개념과 “때를 알아야 대처한다”는 수시변혁의 학문 주역이 문명의 전환기를 맞는 인류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는지 강연했다. ‘신동아’는 대산 선생의 생생한 강연내용을 소개한다.

지금은 문명시대입니다. 과학문명이 최고로 발달하여 참으로 살기 좋은 시대입니다. 옛날 어른들의 말씀이 기억 나네요. “운거(雲車)를 타고 벽공(碧空)에 비상(飛翔)한다”고 했는데, 그 당시에는 하늘에 구름만 떠다니는 줄 알았죠. 그런데 운거를 타고 푸른 하늘에 날아오른다고 했습니다. 또 “좌견천리(坐見千里)하고 입견만리(立見萬里)한다”고도 했는데, 앉아서 천리를 보고 서서 만리를 본다는 뜻이죠. 참으로 막연하고 꿈 같은 얘기였죠. 그런데 오늘날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천리만리를 봅니다. 그뿐만 아니라 컴퓨터, 인터넷, 미사일, 인공위성, 핵이니 하는 등 아주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 문명은 서양의 물질문명입니다.
주역에 음양(陰陽)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양은 정신이고 음은 물질입니다. 그 음양을 동서(東西)로 말하면 동은 양이고 서는 음이지요. 동양은 해가 뜨는 곳이고 서양은 그 햇빛을 받는 곳이며, 동양이 나무가 뿌리를 내리는 곳이라면 서양은 그 뿌리내린 나무가 가지를 모아가는 곳입니다. 그래서 동양은 정신적이고 서양은 물질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물질문명을 너무 무분별하게 받아들여서 범람하는 물질문명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이 물려준 도덕, 철학, 정신이 점차 말살돼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참으로 살기 좋은 시대인데도 늘 불안과 공포에 떨면서 살고 있습니다. 옛날 같으면 짚신 삼아 신고 먼길을 걸어 발이 부르터도 마음만은 편했는데 지금은 자동차에 앉아서 편히 먼 길을 가면서도 늘 마음 한구석은 편치 못합니다. 정신이 아주 쇠약해진 것이죠. 육체만 비대해지면 그 육체는 병나기 쉽고 죽기 쉬운 것입니다. 사회도 한가지입니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물질의 풍요함을 누리고 있습니다만 속으로는 사실상 퇴폐하고 있는 것이지요.
건강한 몸, 건강한 가정, 건강한 사회를 이루자면 그 대안이 무엇인가. 우리는 근기(根氣)를 길러야 합니다. 근기를 기르려면 기본을 공고히 해야 하는 것이고, 우리의 정신적 원천을 다시 회복해서 길러야 하는데 그 정신적 학문이 5000년 전부터 시작된 주역입니다. 우리는 2000년대가 열리는 문명의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 전환(轉換)이라고 하는 것은 ‘구를 전(轉) 바꿀 환(換)’ 말 그대로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이리 바뀌고 저리 바뀌니 내일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는 겁니다. “문명의 전환기에 왜 주역인가?”라고 묻는다면 “바로 그래서 주역이다!”라고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지요.
주역은 3가지로 나눠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천역(天易), 서역(書易), 인역(人易)입니다. 천역은 하느님이 창조한 만물의 역, 그러니까 천지자연의 역을 말하지요. 서역은 천역을 괘(卦)라 하는 부호로 모사해서 그리고, 그린 부호를 놓고 글로 설명해서 책으로 엮은 ‘주역’을 말합니다. 인역이라고 하는 건 사람이 주역이라고 하는 서역 속에서 천지자연의 역인 천역을 공부해 그 이치를 통해 세상에 내놓은 것이지요.

만물의 근원 태극(太極)

먼저 천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주만물이 있기 전 공허하고 혼돈했을 때를 태극(太極)이라고 합니다. 이를 풀이해 보면 공간적으로는 ‘클 태(太)와 덩어리 극(極)’, 즉 큰 덩어리라는 말이고, 또 시간적으로는 ‘처음 태’와 ‘끝 극’, 즉 처음에서 끝까지라는 말이지요. 그런데 이 태극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끝이 없기 때문에 무극(无極)이라고 합니다. 한없이 커서 태극인데 그 큰 것이 끝이 없으니 태극은 곧 무극이고 무극은 곧 태극이 됩니다.
이 태극은 만물의 근원이 되며 모든 만물은 태극에서 나왔습니다. 만물이 태극에서 나올 때 모두 태극 속에 들어 있는 생명체인 핵(核)을 가지고 나오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무 열매가 땅에 떨어져 썩을 것 같아도 썩지 않고 살아나는 것은 영생불멸하는 태극의 핵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물이라면 미물까지도 태극의 핵을 보유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볼 때 모두가 귀중한 존재입니다.
이렇게 만물의 근원이 되기 때문에 모든 것의 처음을 태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춘하추동(春夏秋冬)을 예로 들면 봄이 태극이 되고, 동서남북(東西南北)이라고 하면 동이 태극이 되고, 인의예지(仁義禮智) 하면 인이 태극이 됩니다. 세계적 방위로 말하면 간방(艮方)에서 모든 게 시작되기 때문에 간방을 태극이라고 합니다. 간방은 우리나라입니다. 우리나라가 간방(동북방을 지칭)에 해당한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태극도 하나, 우리나라도 하나, 간방도 하나, 태극기도 하나입니다. 다른 나라가 갖지 않은 태극기(太極旗)를 우리나라가 국기로 갖고 있는 것은 바로 우리나라가 간방이기 때문이고 간방이 태극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태극기만 흔들어댈 것이 아니라 태극을 깊이 알아야 합니다. 태극을 아는 것은 우리나라를 아는 것입니다. 이 태극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나라를 사랑하는 것이죠.
그리고 태극 사상을 가져야 합니다. 태극은 사랑으로 만물을 내기 때문에 사랑이 곧 태극사상입니다. 우리나라 개국이념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인데 그 홍익인간이 바로 태극사상인 것입니다.

태극에서 탄생한 음양(陰陽)

태극 다음에는 음양입니다. 그러면 이 태극 속에서 당초 뭐가 나오느냐, 음과 양이라고 하는 거대한 두 기운이 나옵니다. 양은 동(動)하는 것이고 음은 정(靜)하는 것입니다. 양이 먼저고 음이 그 다음입니다. 태극에서 나온 양은 가볍고 맑아서 올라가 하늘이 되고 음은 무겁고 탁해서 내려가 땅이 됩니다. 이렇게 해서 천지창조가 태극 음양에 의해서 이루어지네요. 양의 정(精)한 기운은 해가 돼서 비치고 음의 정(精)한 기운은 달이 돼서 비칩니다. 음양은 해와 달이 되고, 사람에게는 남자와 여자가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음양이라고 하는 것은 태극에서 나왔는데 서로가 대립(對立)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걸 놓고서 말하면 그것이 다 음양인 것입니다. 하늘은 양이고 땅은 음이며, 해는 양이고 달은 음이며, 낮은 양이고 밤은 음이며, 밝은 곳은 양이고 어두운 곳은 음이며, 사람은 양이고 귀신은 음입니다. 남자는 양 여자는 음, 남편은 양 아내는 음, 아버지는 양 어머니는 음, 위는 양 아래는 음, 앞은 양 뒤는 음, 좌는 양 우는 음입니다.
음양은 서로 대립관계에 있으면서 또한 상승(相勝)작용을 합니다. 음이 변하면 양이 되고 양이 변하면 음이 되고, 양은 음을 밀어내고 음은 양을 밀어내고, 음이 오면 양이 물러나고 양이 오면 음이 물러나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음양의 변화라는 것 아니겠어요?
이렇게 음양은 상승작용을 하면서 또한 상호 보완(補完)작용을 합니다. 음 혼자나 양 혼자만으로는 아무 일도 못 합니다. 이래서 음은 양이 필요하고 양은 음이 필요해서 서로가 대립관계이고 상승하면서 상호 보완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음 속에 양이 있고 양 속에 음이 있는 것입니다(相含). 음 속에 양이 있다는 것은 겨울은 음으로 추운 때인데 그 가운데 양으로 조(燥)한 것이 있고, 여름은 양으로 더운 때인데 그 가운데 음으로 습(濕)한 것이 있는 것입니다. 바로 세상은 너와 나가 음양관계인 것입니다. 나 속에 남이 들어있고 남 속에 내가 들어있는 것 아니겠어요? 내가 싫으면 남도 싫고 내가 좋으면 남도 좋지요. 그러니까 내가 싫은 건 남한테 베풀지 말아야 하고 내가 좋은 것은 남한테 베풀어야지요.
그래서 음양이 서로 필요하듯이 사회에서 나와 남도 서로 필요로 하고, 음양이 서로 화합하듯이 사회에서 너와 나 사이에도 서로 화합을 이룬다면 얼마나 평화롭고 살기 좋은 사회를 이루겠어요?
그래서 음양이라고 하는 것은 혼자는 안 되고 같이 합해야 하는 것이고, 또 늘 음일 수도 없고 늘 양일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음의 전성기에는 양이 꿈틀거리고 양의 전성기에는 음이 시작됩니다. 음의 전성기에 양이 꿈틀거린다는 것은 겨울로 추운 음에서 여름의 더운 양이 오느라 봄으로 따뜻해지는 것이지요. 여름의 더운 양에서 겨울의 추운 음이 오느라 가을로 서늘해집니다.
이 음양(陰陽)이란 글자를 보면 ‘언덕 부(뭐)’를 해놓고 그늘진 곳은 ‘그늘 음(陰)’이라고 하고 볕든 곳은 ‘볕 양(陽)’ 이라고 합니다. 그늘진 곳이 있고 볕든 곳이 있는데 그늘진 곳이 결국 또 볕이 들게 되고 볕든 곳이 다시 그늘지고 이렇게 해서 늘 그 자리에 있지 않는 것이죠. 사람도 이러한 음양의 이치를 알아서 나아갈 때 나아가고 물러갈 때 물러가 진퇴(進退)를 분명히 알고 행동하면 탈이 없는 것 아니겠어요?
음양이 태극에서 나오기 때문에 태극은 하나이고 음양은 둘입니다. 그래서 태극을 일원(一元)이라고 한다면 음양은 이원(二元)입니다. 일원적 이원론(一元的二元論)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삼재(三才)

음양에 대해서는 이쯤 말씀드리고, 다음은 삼재(三才)입니다. 천지인(天地人)을 말하는 것이죠. ‘재주 재(才)’ 자는 원래 ‘바탕 재(材)’에서 따온 것입니다. ‘재목 재(材)’와도 통하지요. 위로는 하늘이 바탕이 되고 아래로는 땅이 바탕이 되고 중간에는 사람이 바탕이 되지요. 천재(天才)·지재(地才)·인재(人才)입니다. 그런데 음양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 만나면 또 하나를 낳기 때문에 셋이 됩니다. 남녀가 만나서 아들이든 딸이든 낳으면 셋이 되는 것이죠.
주역에서 양을 그리는데 하나로 이어서(-) 그렸습니다. 이것은 양이 먼저 나오기 때문에 한 획(-)으로 그은 것입니다. 두 번째 음이 나오기 때문에 두 획으로 나눠서(--) 그었어요. 그것이 음이라는 부호(--)입니다. 하나로 쭉 그은 양은 먼저 나와서 하나로 그었건만 그 하나는 하늘로 둥글고 양적 동물의 성기(性器)가 되며, 두 번째 나와 둘로 나눠 그었는데 그것은 수륙(水陸)으로 나눠진 땅이 되며 음적 동물의 성기가 되는 것입니다.
양은 동(動)하는 것이고 음은 정(靜)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는데 동하는 양이 정하는 음을 찾아가고 정하는 음은 동하는 양을 만나 서로 교합하고, 그래서 음이 양의 기운을 받아들여 잉태를 합니다. 그래서 양은 능동적이고 음은 수동적이라고 하는 것이죠. 바로 지금 말씀드린 음양의 부호인 하나로 쭉 그은 것과 둘로 나눠 그은 것이 같이 만나면 자연 획이 셋(---)이 되듯이 음양이 만나면 셋이 됩니다.
천지에 사람이 있어 천·지·인, 아버지 어머니가 자식을 낳아 부·모·자 이렇게 되면 삼의 원리가 나옵니다. 영토가 있고 통치자가 있으면 국민이 있어 셋, 회사가 있고 사용자가 있으면 근로자가 있어 셋, 시기가 있고 장소가 있으면 노력이 있어서 셋입니다. 한 일(一)과 두 이(二)는 합해서 석 삼(三)이 되고, 날 일(日) 변에 달 월(月)을 더하면 밝을 명(明)이 됩니다. 이렇게 해서 모든 것이 삼의 원리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괘를 그리는데도 삼 획으로 그리듯이 하늘·땅·사람입니다. 위에는 하늘, 아래는 땅, 중간에 사람이라는 것은 우주공간을 그대로 모사한 것입니다. 우주공간이 셋으로 이루어지듯 사람의 인체도 3마디로 이루어집니다. 그게 삼의 원리지요. 그래서 우리 조상은 삼신할머니니 삼세판이니 하는 삼을 많이 말씀했지요.

사상(四象)

다음은 사상(四象)입니다. 네 가지의 형상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 사상은 태양(太陽), 태음(太陰), 소양(小陽), 소음(小陰)입니다. 태극에서 음양이 나온 것을 하나에서 둘이 나오는 법칙이라고 해서 ‘일생이법(一生二法)’이라고 합니다. 분열의 법칙인 것이지요.
이 일생이법에 의해서 태극에서 음양이 나왔어요. 음양이 일생이법에 의해서 또 둘씩 낳고 보니까 양이 둘을 낳고 음이 둘을 낳으니까 넷으로 사상이 되네요. 태극에서 나왔던 양 하나에서 양이 양으로 커진 것은 태양( )이고, 양이 음으로 분화된 것은 조그마한 음이 됐다고 해서 소음(---- )입니다. 또 음이 음으로 진화된 것은 태음( )이고 음이 양으로 분화된 것은 작은 양이 왔다고 해서 소양( )이 됩니다.
태양·소음·소양·태음의 사상은 하늘의 일월성신(日月星辰) 땅의 산천초목(山川草木)과 방위의 동서남북, 사람의 팔 다리인 사지(四枝)나 얼굴의 이목구비(耳目口鼻)인데 이 상은 삼라만상(森羅萬象)으로 확산돼 나가죠.
모든 것이 상이 있기에 그 상이 살고 있는 원리인 보이지 않는 이치작용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이치가 작용해 모든 만물이 생성 변화하는데 그 이치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이치를 알려면 상을 먼저 만들어놓고, 보이는 상을 보고서 보이지 않는 이치를 알아내야지요. 그래서 주역의 괘라고 하는 것이 나왔고 그것을 괘상(卦象)이라고 하는 것이며, 괘상을 보고 숨어 있는 이치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도 모두가 나름대로 자기 상을 타고나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그 사람의 상을 보고 그 사람이 살고 있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도 우스갯소리 비슷하게 ‘상값 한다’ ‘꼴값 한다’라고 얘기했던 것입니다.
이제마(李濟馬) 선생은 이 사상을 가지고 사상의학(四象醫學)을 만들었습니다. 태양체·태음체·소양체·소음체, 사람의 체형은 이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는 얘기지요. 어떤 체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에게 어떤 음식이 맞는가 맞지 않는가, 혹은 무슨 약이 잘 듣고 안 듣는가, 무슨 병이 잘 나고 안 나는가 하는 것들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역은 상·수·이(象數理)입니다. 보이지 않는 이치(理)를 알려면 보이는 상(象)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상을 만들어내자면 수(數)가 있어야 합니다.
조금 어려운 말씀입니다만 주역에 괘상이 나오는데 수로 나옵니다. 하나라는 수는 하늘괘( )가 되고, 둘이라는 수는 못괘( )가 되고, 셋이라는 수는 불괘( )가 되고, 넷이라는 수는 우레괘( )가 되고, 다섯이라는 수는 바람괘( )가 되고, 여섯이라는 수는 물괘( )가 되고, 일곱이라는 수는 산괘( )가 되고, 여덟이라는 수는 땅괘( )가 됩니다. 그것을 일건천(一乾天), 이태택(二兌澤), 삼리화(三離火), 사진뢰(四震雷), 오손풍(五巽風), 육감수(六坎水), 칠간산(七艮山), 팔곤지(八坤地)라 하는 것이죠.
이렇게 수가 나옴으로써 상이 이루어지고 그 상을 보고 상 속에 들어 있는 이치를 아는 것입니다. 무슨 수가 나왔느냐 하는데서 상이 나오니까요. 우리가 말할 때 그걸 먹을 수 있나, 입을 수 있나, 거기 갈 수 있나, 여기 올 수 있나, 무슨 수를 내야 되겠는데 뾰족한 수가 없다, 그럴 수가 있냐, 미지수, 신수, 재수, 운수, 이렇게 수타령을 많이 합니다.

오행(五行)

다음은 오행(五行)입니다. 다섯 가지가 가고 있다, 다섯 번의 절차를 행한다, 다섯가지가 움직이고 있다고 하는 오행은 수화목금토(水火木金土)입니다. 맨 먼저 물, 그 다음에 불, 나무, 쇠, 흙이죠. 왜 맨 먼저 물이냐? 모든 생물이 나오는데 액(液)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물에서부터 나오죠. 액인 물에는 기운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냥 액만 있는 것이지요. 그것을 유액무기(有液無氣)라고 하는데 아직 액만 있지 기운은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 다음에 불은 유기무형(有氣無形)이라고 합니다. 기운은 있되 형체가 없다는 뜻인데 불은 손으로 잡아볼 수 있는 형체가 없지요. 그 다음에 나무는 형체는 있는데 질이 없다고 해서 유형무질(有形無質)입니다. 그 다음에 쇠는 질은 있는데 체가 없어 유질무체(有質無體)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흙은 유질유체(有質有體)로 체가 있게 되어 완전히 모양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물체가 나옵니다. 바로 이 오행은 가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사람 몸 속에 들어가서 물은 신장(腎臟)이 되고 불은 심장(心臟)이 되고 나무는 간장(肝臟)이 되고 금은 폐장(肺臟)이 되고 흙은 비장(脾臟)이 됩니다. 이렇게 해서 심·간·비·폐·신이라는 오장도 역시 오행으로서 이루어지고 이것이 움직여서 살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오행은 간다, 움직인다고 하며 또 오행의 행(行)자를 열을 짓는다는 항(行)이라고도 읽습니다.
기러기가 하늘을 날 때 열을 지어 납니다. 그걸 ‘기러기 안(雁)’자와 ‘열 항(行)’자를 써가지고 안항(雁行)이라고 하지요. 사람의 형제간을 가리킬 때 부모 밑에서 열을 짓고 있다고 하여 안항이라고 합니다. 옛날에 형제간을 물을 때 안항이 몇 분이나 되냐고 묻곤 했지요. 오행이 이렇게 항을 짓고 서로가 나란히 있으면서 갈 곳을 가고 움직일 때 움직입니다.
하늘에는 수기(水氣) 화기(火氣) 목기(木氣) 금기(金氣) 토기(土氣)의 오기(五氣)가 있어요. 보이지 않는 기운인데 수기는 물이 차기 때문에 추운 기운으로 알게 되고, 화기는 불이 덥기 때문에 더운 기운으로 알고, 목기는 따뜻하기 때문에 따뜻한 걸로 압니다. 따뜻한 봄을 목왕절(木旺節)이라고 합니다. 금기는 서늘한 기운으로 알게 되고, 흙은 습하니 습한 기운으로 알게 되는 것이지요. 하늘에는 오기가 움직이고 있으며 땅에는 수 화 목 금 토라는 다섯 가지 물체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행이라고 하는 것은 다섯 번의 절차를 거쳐서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는 얘기지요.
‘서경(書經)’에 홍범구주(洪範九疇)라고 하는 오행학설을 보면 처음에는 물(一曰水)이라고 해놓고서 사람에 있어서는 모양(貌)이라고 했습니다. 첫째 물로는 사람의 모양을 이룬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둘째 불(二曰火)로 사람이 말(言)을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아기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우는데 불기운으로 발양해서 말이 나오는 것이지요. 셋째 나무(三曰木)로는 나온 아기가 눈을 뜨고 봅니다(視). 셋째 나무는 간장(肝臟)에 속하고 간에는 눈이 속해 있습니다. 간에 열이 있으면 눈이 침침하거나 붉어지거나 합니다. 넷째 금(四曰金)으로 듣는다(聽)고 했습니다. 다섯째 토(五曰土)로는 생각한다(思)고 했는데 토는 중앙으로, 모든 것이 중앙에서 이루어집니다. 의식이 분명히 있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수화목금토와 모언시청사(貌言視聽思)의 순서를 말했습니다.
여자가 애를 배는 임신 1개월에는 수기로 정액만 엉기기 때문에 태기를 잘 모릅니다. 그러다가 임신 2개월이 되면 화기로 기혈이 흐르기 때문에 입덧도 나고 그러죠. 임신 3개월이면 목기로 모발이 생기고, 임신 4개월에는 금기로 골격이 생기고, 임신 5개월에는 토기로 피부가 완성됩니다. 그래서 태아의 형체가 완전히 이루어지고 6개월, 7개월, 8개월, 9개월, 10개월의 이 5개월 동안은 태아가 완전히 자라 형성되는 과정이죠. 세상에 나와서 살 만큼 커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섯 번의 절차를 거치고 어디라도 가지 않은 곳이 없어서 ‘갈 행(行)’인데 또 그것이 모두 움직여서 ‘움직일 행(行)’, 그래서 오행이 되는 것입니다.
발음(發音)도 어금니에서 나오는 소리가 있으니 아음(牙音)으로 목에 속하고, 혀에서 나오는 소리가 있으니 설음(舌音)으로 화에 속하고, 입술에서 나는 소리가 있으니 순음(脣音)으로 토에 속하고, 이에서 나는 소리가 있으니 치음(齒音)으로 금에 속하고,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가 있으니 후음(喉音)으로 수에 속합니다. 아음은 한글의 ㄱ이고 설음은 한글의 ㄴ이고 순음은 한글의 ㅁ이고 치음은 한글의 ㅅ이고 후음은 한글의 ㅇ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 한글의 원리도 오행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기본자가 ㄱ ㄴ ㅁ ㅅ ㅇ 아니겠어요. ㄱ자를 써놓고 거기에 획을 덧붙이면 ㅋ자가 되는 것이고, ㄴ자에 획을 더하면 ㄷ ㄹ ㅌ이 나오는 것입니다. ㅁ에다가 획을 덧붙이면 ㅂ ㅍ이 되고, ㅅ에다 획을 덧붙이면 ㅈ ㅊ이 되고, ㅇ에다 획을 덧붙이면 ㅎ이 됩니다. 자음 모음이 마찬가지입니다. 가 나 마 사 아가 기본인데, ‘가’를 하면 자연 그 음이 ‘카’ 하게 됩니다. ‘나’ 하면 ‘다라타’가 나오고, ‘마’ 하면 ‘바파’가 나오고, ‘사’를 하면 ‘자차’가 나오고, ‘아’를 하면 ‘하’가 나오지요. 이렇게 모든 것이 오행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의 작은 자연

오행은 서로 생하고 극합니다. 물은 나무를 생하고(水生木), 나무는 불을 생하고(木生火), 불은 흙을 생하고(火生土), 흙은 금을 생하고(土生金), 금은 물을 생합니다(金生水). 그리고 물은 불을 극하고(水克火), 불은 금을 극하고(火克金), 금은 나무를 극하고(金克木), 나무는 흙을 극하고(木克土), 흙은 물을 극합니다(土克水). 아까 음양이 상호 대립하고 상승(相勝)하면서 상호보완하듯 오행도 상생하며 상극합니다. 생하기만 해도 안 되고 극하기만 해도 안 되지요. 동시에 생극하므로 생태계가 영원히 유지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연의 원리거든요.
사람의 얼굴도 다섯 번의 절차에 따라 생깁니다. 얼굴의 위는 불에 해당하고, 아래는 물에 해당하고, 좌(左)는 나무, 우(右)는 금, 중앙은 토로 봅니다. 그리고 사람의 얼굴을 오체(五體)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수체·화체·목체·금체·토체가 그것이지요. 수체는 물이 아래로 흐르기 때문에 아래가 빨고, 화체는 불이 위로 타올라가기 때문에 위가 좁고, 목체는 얼굴이 길고, 금체는 얼굴이 모나고, 토체는 얼굴이 둥급니다. 사람도 하나의 자연인 것이지요. 사람의 두 눈은 해와 달에 비유가 되고 코는 산에 비유되고, 입은 호수, 모발은 수목, 오장 육부는 오대양 육대주, 신경은 통신망 등으로 붙여서 말해볼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은 하나의 작은 자연입니다.
‘음부경(陰符經)’이라는 책을 보면 ‘우주재호수(宇宙在乎手)’라고 했습니다. 이 우주가 모두 내 손 안에 있다! 옛날에 어른들은 천하만사가 손바닥 안에 다 들어있다고 했습니다. 좀 어려운 말씀입니다만 손바닥 안에는 팔괘(八卦), 십이지지(十二地枝)가 다 들어있습니다. 일건천 이태택 삼리화 사진뢰 오손풍 육감수 칠간산 팔곤지의 팔괘가 들어있지요. 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의 12지지도 들어있습니다.
엄지가 토라면 둘째 셋째 넷째 새끼손가락은 차례대로 목·화·금·수이지요. 엄지를 천지라고 하면 나머지는 차례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됩니다. 여름은 해가 기니 가운데 손가락이 제일 길고, 겨울은 해가 짧아 새끼손가락이 가장 짧고, 봄가을은 해 길이가 비슷하니 둘째와 넷째 손가락의 길이가 비슷합니다. 손가락 마디를 살펴보아도 정월 2월 3월은 봄이고, 4월 5월 6월은 여름이고 7월 8월 9월은 가을이고 10월, 동지, 섣달은 겨울이지요. 그래서 옛날에 어른들은 애들을 놓고 ‘쥐엄쥐엄’ 하면서 손바닥 안에 쥐고 있는 이치를 깨달으라고 했고, 자연인으로서 네가 나와서 살고 있는 모든 도리를 깨달으라고 해서 ‘도리도리’ 하고 가르쳤습니다. 여기까지가 천역이네요.

복희씨가 창안한 팔괘

다음은 서역(書易)입니다.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 복희씨(伏羲氏)라는 성인(聖人)이 처음으로 왕이 돼서 백성을 다스릴 적입니다. 그때만 해도 문자도 없고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복희씨는 뭔가 표상이 있어야 그걸 기준으로 해서 백성을 다스릴 수 있겠다고 생각해 하늘을 상징하는 작대기를 죽 그었습니다. 또 아래로 땅을 보고 땅을 상징해서 하나를 그었습니다. 또 중간에 만물을 대표한 사람을 보고 사람을 상징해서 하나를 그었습니다. 그것이 조금 전에 말씀드린 천지인 삼재라는 것이지요.
위로는 하늘, 아래로는 땅, 중간에는 사람, 이렇게 천지인의 위 아래 중간은 하나의 우주 공간이지요. 이것을 모사해서 세 획으로 괘를 그렸습니다. 그 세 획을 모두 하늘에 해당하는 양으로 그린 것은 하늘 괘()라 하고 음으로 세 획을 다 그린 것은 땅 괘()라고 합니다. 위로는 하늘이고 아래로는 땅이기 때문에 하늘 괘를 위에 놓고 땅괘를 아래에 놓았지요.
이 천지는 음양이요 음양은 사귀는 것입니다. 사귀어서 천지의 아들 딸이 나오는데 큰아들인 우레( ), 가운데 아들인 물( ), 셋째 아들인 산( )과 큰딸인 바람( ), 둘째 딸인 불( ), 셋째 딸인 못(三 )이 되는데, 이 여섯 자녀는 천지와 더불어 천지의 여덟 가족이 되네요. 이것을 인간으로 말하면 하늘 괘는 아버지가 되고 땅 괘는 어머니가 됩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사귀어서 그 사이에 큰아들이 나오고 둘째 아들이 나오고 셋째 아들이 나옵니다. 또 큰딸이 나오고 둘째 딸이 나오고 셋째 딸이 나오지요.
이렇게 보면 천지가 대부모라면 인간은 소부모이고, 천지가 대천지라면 인간은 소천지이고, 천지가 대자연이라면 인간은 소자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희씨가 이렇게 괘를 그려놓고 그 당시에 정치 경제의 수단으로 삼았으며 의사소통의 기본 요체로 삼았던 것입니다.
복희씨 이후 문자시대로 접어든 은나라 말기에 서쪽 제후였던 주(周)나라 문왕(文王)이라는 성인(聖人)이 복희씨가 그린 괘를 자연에 빗대 글로 변증설명을 했고, 이어서 문왕의 아들 주공(周公)이 복희씨가 그린 괘를 이루는 하나하나의 효를 글로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괘는 음양으로 되어있고 음양은 서로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괘는 역(易)이라고 합니다.
복희씨가 그린 괘는 ‘바꿀 역(易)’자예요. 그리고 문왕이 괘를 설명한 글이나 주공이 효를 설명한 글이나 모두 ‘글 경(經)’자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역경(易經)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역경이 주나라 때 이루어져서 주역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주역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만, 분명히 복희씨가 그린 괘가 들어있어야 하고 문왕·주공이 그 괘와 효를 설명한 글이 들어있어야 그것이 주역이 되는 것입니다.
점을 보는 책으로는 ‘복서정종(卜筮正宗)’이 있고, 사주를 보는 책으로는 ‘명리정종(命理正宗)’이 있고, 의서로는 ‘의학입문(醫學入門)’이 있는 등 여러 분야의 책들이 있습니다만 분명히 그것 자체가 주역은 아닌 것입니다. 만약 그것만 공부하고서 “이건 주역이다” “주역을 공부했다”고 말하면 안 되죠. 일반 사람들이 사주 보는 것을 가지고 주역을 공부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겁니다. 코끼리 발가락이 “내가 코끼리다”라고 하면 안 되지요. 그러나 코끼리가 “그 발가락은 내 발가락이다”라고는 할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주역에 근거를 두고 주역에서 파생되어 나간 것이기 때문이지요.

주역을 집대성한 공자의 뜻

이 주역을 공자가 집대성했습니다. 공자가 3000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철환천하(轍環天下)하여 중원 땅을 누비며 도(道)를 펴려다가 아무래도 도를 펴지 못하자, 다시 돌아와서는 ‘산시서(刪詩書)’, 즉 시경·서경 이러한 글에서 모두 깎아낼 것 깎아내고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주역도 그와 같이 정리를 하려다가 공자는 깜짝 놀랐다는 것입니다. 주역은 복희씨가 이치에 맞도록 그린 괘, 문왕이 이치에 맞도록 설명한 글(괘사), 주공이 이치에 맞도록 설명한 글(효사), 여기에다가 내가 붓을 대고 가타부타하지 못한다, 그래서 술이부작(述而不作), 즉 전술만 했지 창작은 못한다고 말씀하고는 주역을 후세사람들이 알기 쉽도록 해설전 10가지를 붙였습니다. 공자에 의해 비로소 주역이 집대성된 것이지요.
성경현전(聖經賢傳)이라고 해서 성인이 지은 글은 경이고 현인이 지은 글은 전입니다. 공자가 지은 글도 성인이기 때문에 모두 경(經)이건만 주역만은 여기에 속하질 못하고 전(傳)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십익전 괘사전, 이렇게 전이라고 합니다.
공자가 썼어도 경에 들지 못하고 전이라고 할 정도로 주역은 큰 글이라는 것인데 공자는 주역을 집대성하느라 위편삼절(韋編三絶), 즉 주역책을 엮어 놓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종이가 없기 때문에 대나무를 쪼개서 글을 새긴 후에 가죽끈으로 죽 엮었습니다. 그것을 죽 펴놓고 다시 두르르 말았기 때문에 두루말이 1권(卷) 2권(卷)이라 하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공자가 주역을 가죽끈으로 엮어놓고서 펴서 보고 말아놓고 펴보고 또 말아놓고 이렇게 하다 보니까 주역을 엮은 가죽끈이 세 번 끊어져 위편삼절입니다.
공자가 왜 위편삼절을 했느냐, 오십(五十)에 지천명(知天命)을 한다고 하신 성인으로 생이지지(生而知之)라고 하는데 그 주역을 몰라서 위편삼절 했겠느냐, 공자는 주역에다 깊은 뜻을 두었습니다. 공자는 주역으로 해서 후천시대가 온다는 것을 알았어요. 앞으로 후천시대가 열리면 천하가 하나가 된다, 내가 이 좁은 중원 땅에 도를 펴려고 하느니 천하가 하나 되는 후천시대에 펴야 하겠다, 그러려면 글로 전해야 하는데 시경이나 서경 이런 것 가지고는 안 되고 오직 주역이라야 된다, 그래서 주역에다가 후천시대에 펼쳐질 도덕과 경륜을 담아놓은 것입니다. 주역은 후천시대에 펼쳐질 공자의 사상이 깊이 들어있는 비사체(秘辭體)이기도 합니다.
공자는 주역을 마무리지으면서 “서부진언(書不盡言)하며―글로는 하고자 하는 말을 다 쓰지 못하고―언부진의(言不盡意)니―말로는 마음속에 품은 내 뜻을 다 표현 못한다―그런즉 성인지의(聖人之意)를 불가견호(不可見乎)아- 그렇다면 성인의 말 못하고 글로 다 못쓰는 깊은 뜻을 읽어볼 수 있지 않겠느냐. 신이지래(神以知來)코 지이장왕(知以藏往)하나니 기숙능여어차재(其孰能與於此哉)리요―신으로써 다가올 미래사를 알고 내가 주역 속에 감추고 가는데 누가 여기 참여해서 그 뜻을 깊이 알아낼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시황의 출현을 내다본 공자

공자가 이렇게 주역을 집대성해놓고 천기를 내다보니까 앞으로 200년 후면 진시황(秦始皇)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서책을 다 불태울 걸 알았어요. 아! 이렇게 되면 내가 애써 해놓은 주역이 불탈 것이고 그러면 나의 도가 후천시대에 펴질 못할 터이니 진시황이 책을 태우지 못하게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천자문’에 있는 말입니다만 칠서벽경(漆書壁經),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대나무를 쪼개놓고 글씨를 새겨쓰고 나서 새까맣게 옻칠을 한 뒤에 벽을 발랐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한 200년 후면 좀먹고 썩을 우려가 있으므로 주역이 옳게 전해져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옳게 전할 수 있을까를 고심한 끝에, 공자는 진시황의 마음을 꿰뚫어 봤습니다. 이 사람이 왜 서책을 불태울까? 이 사람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틀림없이 싸움을 좋아해서 남 이기기를 좋아할 것이고 남 모르는 걸 자기 혼자 알려 할 것이니, 점서로 해놓으면 자기가 평생 쓰기 위해 태우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점서로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주역이 겉으로는 점서이고 속은 공자의 사상이 들어 있는 까닭도 여기에서 연유합니다. 점서의 형식을 빌려가지고 공자는 그 주역 속에 후천시대에 펼 도덕경륜을 담아 집대성한 것입니다.
주역이 하나 이루어지는 데는 “시력삼고(時歷三古)하고 인경사성(人經四聖)이라”. 때는 삼고를 지내고, 즉 복희씨의 상고시대와 문왕과 주공의 중고시대와 공자의 하고시대를 지내고, 사람은 네 분 성인의 손을 거쳐서, 즉 복희씨의 손을 거쳐 문자가 있기 전 괘라고 하는 부호가 나오고 문왕의 손을 거쳐 괘를 설명한 괘사 글이 나오고 주공의 손을 거쳐 효를 설명한 효사 글이 나오고 거기에 공자의 손을 거쳐서 해설전 10가지가 붙게 되어 주역이 완전히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또 “사성일심(四聖一心)이라”. 네 분 성인의 마음이 한결같아서 복희씨의 괘를 그린 마음이나 문왕이 괘사를 지은 마음이나 효사를 지은 주공의 마음이나 10가지 해설전을 지은 공자의 마음이나 네 분 성인의 마음이 일치한다는 것이지요. 비록 시대는 다르고 몇 천년에 걸쳐 이루어졌지만 네분 성인이 전한 도는 하나 같다는 말씀이지요.
이렇게 주역이 공자의 손에서 마무리가 되고 후세에 주역이 전하게 됐는데 그렇다면 진시황에 대해 간단히라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는데요. 여러분께서는 진시황을 잘 아실 겁니다. 6국을 통일하고 아방궁을 짓는다,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한 사람 아니겠어요. 진시황은 동쪽에 삼신산(三神山)이 있고 그 삼신산에 불사약(不死藥)이 있다는 말을 듣고 오래 살 욕심에, 그 불사약을 구해오라고 서씨라는 사람에게 동남동녀(童男童女) 500명을 딸려보냈습니다. 서씨가 진시황의 명을 받아 삼신산으로 불사약을 캐러갔는데, 그 삼신산이 바로 우리나라 제주도 한라산(漢拏山)이고 그 불사약은 아마도 영지(靈芝)일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이 있어요. 서씨는 삼신산인 한라산으로 동남동녀 500명을 이끌고 가서 불사약인 영지를 캐가지고 서귀포(西歸浦)로부터 귀항(歸港)하다 태풍을 만나 일본 구주에 가서 일본 사람들의 시조가 됐다는 말이 전해옵니다.
진시황이 몇 만세라도 해먹을 욕심에, 사람이 배우면 모든 걸 알고 똑똑해져 내 것을 뺏으려고 들 테니까 모두 소나 말을 만들어서 이리 끌면 이리 끌려다니고 저리 끌면 저리 끌려다니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배우지 못하게 해야 하고 그러려면 서책을 불태워야 한다고 해서 다 태웠습니다. 그때 주역을 태우려다 점서인 것을 알고 이것은 내가 갖고 점을 쳐야겠다 해서 태우지 않았습니다. 궁금하면 점을 쳐야 하고 병이 나면 약을 써야겠기에 의약복서는 태우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또 가만히 생각하니 선비를 놔두면 또 책이 나온다, 책을 없애려면 선비를 다 없애버려야겠다 해서 선비를 다 묻어죽였습니다. 분서갱유(焚書坑儒), 책을 다 태우고 선비를 죽이고 나서 또 생각해보니까 공자의 사당을 놔두는 한 그 사상이 잠재해 있다가 또 선비가 나오고 글이 나오고 하면 안 되겠기에, 공자의 사당을 허물고 공자의 위패를 불태우려고 보니 거기에 “후세에 한 남자가 있어서(後世有一男子) 내 사당에 들어와서(入我堂) 위패와 모든 유품을 훼손시키고(毁我冠裳) 사구평대에서 죽으리라(卒於沙丘平臺)”고 씌어있어서 두려운 나머지 결국 사당을 허물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후 진시황이 어디를 가다 보니 아이들이 모래를 쌓고 있기에 뭐냐고 물었더니, 모래 사(沙)자 언덕 구(丘)자 사구라 하고, 또 그 옆으로 가보니 아이들이 모래를 쭉 펴놓고 뒹굴며 놀므로 뭐냐고 물으니, 평할 평(平)자 집 대(臺)자 평대라고 하였다는데, 공자의 예언대로 진시황이 이 사구평대에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주역의 전래과정

진시황이 죽고 진나라가 망한 뒤에 한나라가 들어서자, 분서갱유의 참화를 모면하였던 몇몇 늙은 선비들이 다시 글을 외워내고, 칠서를 벽에 발라 놓았던 칠서벽경이 발견되어서 이것이 모두 모여 한문(漢文)이 다시 중흥한 것입니다. 한나라 때 한문이 생겨서 한문이 아니고 공자 때 기존 글들을 진시황이 분서하는 수난을 겪은 뒤에 한나라 선비들이 다시 중흥했다는 의미에서 한문이라고 하는 겁니다.
이러한 주역이 중국에서 어떻게 전승되었는가를 살피면, 먼저 송나라의 주염계 선생의 ‘태극도설(太極圖說)’과 소강절 선생의 ‘황극경세도(皇極經世圖)’를 들 수 있습니다. 태극도설은 태극의 이치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고 황극경세도는 세상이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어디까지 갔는지, 선천과 후천이 언제부터 어디까지인지를 해놓은 것입니다. 뒤이어 정이천(程伊川) 선생이 주역 본문을 의리적으로 해설한 전(傳)과 주자(朱子)가 점서적으로 풀이한 본의(本義)를 통해 역의 학문이 전해왔습니다.
복희씨는 성이 ‘풍(風)씨’로 우리나라의 옛 성인이라고 하는데, 괘도(卦圖)를 그려가지고 중국에 가서 도를 폈다고 하죠.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 때 주역을 공부했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 때 김부식(金富軾)이 주역 건곤괘를 강의했다는 말이 씌어 있습니다. 그런데 고려의 우탁(禹倬)이라는 분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어느 대신 집에서 묵던 중, 대신한테 중국에서 가장 보배로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더니 주역을 내놓았다는 것이죠. 우탁 선생이 주역을 보니 참으로 심오한 뜻이 들어있어 얻고자 했지만 자기 나라의 국보를 내줄 수는 없다고 거절하므로 그 자리에서 한 번 보고 모두 외웠다고 합니다. 귀국하는 도중 동쪽으로 서기가 뻗치므로 중국 조정에서 우탁을 잡아들여 “가져가는 게 뭐 없느냐”고 물으니 “아무것도 없고 다만 주역을 외워가기만 한다”고 답하며, 주역을 줄줄 외더란 얘기죠. 그래서 무릎을 치며 “吾易東이라!―우리의 역이 고려 동쪽으로 가는구나” 하고 탄식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禹易東―우탁이 역을 동으로 가지고 왔다”고 하는데, 이것은 말로만 전해지는 것이지요.
그후 권향촌 이퇴계 이율곡 서화담 이토정 정다산 등 선현들이 주역을 연구했으나 실은 선비들은 주역을 깊이 공부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글들을 공부하기도 바쁘고, 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살림해야 하는데다 과거 공부에 치우치다 보니, 자연 주역을 공부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주역은 사서삼경의 으뜸

옛날에는 시문을 지어야 학자노릇을 했으니, 다만 유배간 이들이나 산으로 은거한 이들이 주역을 공부하긴 했지요. 공부하긴 했으나 함부로 말하다간 역적으로 몰리기 십상이므로 혹 아는 이들도 책에다 쓰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천기누설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주역이 이어지지를 못했습니다. 더구나 지금에 와서는 선비들이 주역을 전혀 몰라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주역은 아무나 배울 글이 못되고 잘못 배우면 미친다는 말을 합니다. 이것은 안 되는 말이지요. 옛 성인이 그런 글을 전했을 리 없고 만약 그렇다면 어찌 주역이 사서삼경의 으뜸자리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선비들이 주역을 모르고, 주역을 연구해서 책을 내는 분들이 있는데, 주역은 문자 이전의 괘부터 그려졌으니 괘를 알고 글을 알아야지, 괘를 떠나 글만 가지고는 모릅니다. 그런데 글만 가지고서 쓰려 하니까 책에 논리만 잔뜩 갖다놓고 핵심은 없어요. 또 앞에서 말한 대로 점서, 사주 보는 책, 관상 보는 책 등을 공부하고는 주역 공부했다고 하고. 또 세상사람들은 으레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주역을 공부한 줄로 압니다. 그게 또 문제가 되네요.
주역에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선후천이 바뀐다고 되어 있어요. 선천시대는 하루로 말하면 오전에 해당하고 후천은 오후에 해당합니다. 1년으로 말하면 봄 여름이 선천에 해당하고 가을 겨울이 후천에 해당합니다. 오전이나 봄 여름은 양 아니겠어요. 오후나 가을 겨울은 음의 시대죠.
선천시대는 남자가 주권을 쥐고 후천시대는 여권이 상승하고, 하늘의 시대가 선천이라면 땅의 시대는 후천이 되는 것 아니겠어요? 선천이라는 시대는 봄 여름이기 때문에 사람이 심고 가꾸고 자연만 따라갑니다. 자연을 따르는 게 선천시대라면 후천시대는 사람이 자연이 되는 겁니다. 자연을 억압하고 이용하면서 자연이 하는 일을 사람이 하는 시대가 후천시대입니다. 즉 가을에 결실이 돼가지고 수확하는 시대인 것입니다. 부모 밑에 자식이 부모 따라 살다가 직접 부모가 돼가지고 부모가 하는 일을 하는 시대인 것이지요.
이러한 후천시대, 후천개벽의 때가 가까워져서인지 최수운(崔水雲) 선생이 후천시대가 오는 걸 알아 “지기금지원위대강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하는 천도교가 나오게 되고, 강증산(姜甑山) 선생이 후천 오는 줄 알아 “훔치훔치 태을천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 사바하” 하는 증산교 등의 여러 신흥종교도 생기고 그랬지요. 또 김일부 선생은 주역에서 후천시대 오는 걸 알고 “음아오이우”로 영가무도를 하면서 정역(正易)이라는 것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사실 공자가 깊이 숨겨놓은 뜻을 알아내신 분은 제가 받들고 공부했던 저의 스승이신 야산(也山) 선생이십니다. 선생님께서는 스승이 없으십니다. 다섯 살 때 서당방에 입학을 시켰는데, 옛날 훈장이 “하늘 천” 하고 가르치니까 “하늘이 뭐요”라고 묻고 “저 파란 게 하늘이다”라고 답하니 “그러면 천(天)은 뭐요” 해서 “음(音)이지 뭐냐” “그럼 음은 뭐요?” “음이 음이지 뭐냐” 하면서 “내 더 이상 너를 못 가르치겠다”고 포기해 혼자 공부한 어른입니다. 그 후 사서오경을 달통하고 깊은 산중에 들어가 주역을 통해 나오셨지요. 그 당시 세상 사람들이 야산 선생을 일컬어 주역에 미쳤다, 주역에 통했다 해서 이주역(李周易)이라고까지 했습니다.

수시변혁의 의미

서역 다음은 인역(人易)입니다. 이 주역이 어떻게 인류사회를 발전시키느냐, 이걸 공자의 말씀을 빌려 간단히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당초 복희씨 때는 노를 꼬아 그물을 짜가지고 산에 가서 산짐승을 잡고 물에 가서 물고기를 잡아먹던 수렵(狩獵)사회, 사냥해서 먹고 살던 시대죠. 신농씨 때에 너른 땅을 이용해서 먹고 살도록 해야겠다 하고서 쟁기도 만들고 보습도 깎아, 땅을 갈고 곡식도 심어먹던 농경(農耕)사회, 그리고 옛날에는 오십리에 장 하나씩 섰다고 합니다만 사람들이 시장을 세워놓고 모이도록 해서 자기가 필요한 대로 바꿔가도록 물물교환하던 교역(交易)사회, 사람이 옷을 입어야 하는데 하늘은 둥글어 윗옷은 둥글게 해입고 땅은 갈라져 아래 옷은 갈라지게 해입고 한 의상(衣裳)사회, 그리고 나무로 배를 짜고 배를 타고서 물을 건너던 승선(乘船)사회, 소와 말을 길들여서 말을 타고 먼 길을 쉽게 달려가고 소에 무거운 짐을 지우는 승마(乘馬)사회, 말 타고 소 부리던 시대죠. 그리고 나무를 깎아 목탁을 만들어 치면서 집 주위를 돌아 도둑을 막았던 방범(防犯)사회, 그리고 나무를 베다가 절구와 공이를 만들어 곡식을 찧어먹던 도정(搗精)사회, 활도 만들고 화살도 만들어 전쟁 등 만약의 국난에 대비했던 무기(武器)사회, 옛날에는 사람이 굴 속에서 살았는데 나무를 깎아 기둥을 세우고 용마름을 틀어올리고 해서 집을 짓고 살았던 가옥(家屋)사회, 사람이 죽으면 들에 버리던 것을 널을 짠 후에 널 속에 시체를 넣고 땅속에 묻었던 매장(埋葬)사회, 옛날에는 사건을 처리하는 데 노를 꼬아가면서 다스렸는데, 큰 사건은 크게 매듭짓고 작은 사건은 작게 매듭짓고 기결은 옭매고 미결은 헐겁게 하였던 것을 글로 바꾸어서 관민(官民)이 문서를 사용하게 했던 문서(文書)사회, 이렇게 인류사회의 문명발전이 다 괘에서 창안되었다고 공자가 ‘계사전’이라는 책에서 설명했습니다.
주역이라 하는 것은 계속 바뀌는 것입니다. 그 전의 수렵사회가 농경사회를 거쳐 지금은 산업화·공업화 사회가 된 것 아니겠어요? 그리고 조그맣게 장을 세우고 이웃 마을끼리 모여서 물물교환하던 시대가 지금은 화폐를 쓰게 되고 세계의 시장에서 무역을 하게 됐습니다. 또 노끈으로 사건을 처리하던 것이 문서에 적발하게 되고 그것이 지금은 컴퓨터 인터넷 시대로 바뀌었네요. 그래서 이걸 수시변역(隨時變易)이라고 합니다. 때를 따라서 변혁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수시변역이라는 말이 나왔으니까 그 전에 공부할 때의 예를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대둔산 석천암에서 야산 선생을 모시고 주역 공부를 할 적에 충남 대덕군 기성면에 산다는 어떤 사람이 와서 같이 공부를 하게 됐습니다. 한번은 그 사람이 집에 가자고 해서 따라갔어요.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충남에서는 제일 가는 문장이고 조선 팔대 문장의 하나로 손꼽히는 이현산 선생님이 이 마을에 계시는데 찾아가서 배우려느냐?” 하기에 “이 사람아! 공부하는 사람은 훌륭한 선생님이 계시면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가야 되는데 여기에 그렇게 훌륭한 선생님이 계시다고 하니 얼른 찾아가 배워야 하지 않겠느냐” 하고 그 사람을 따라갔습니다. 옛날 서당은 윗방이 있고 아랫방이 있는데 아랫방에 현산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선생님께 절을 하고 뵈니까 “지금 어디서 무엇을 공부하고 있느냐?” 해서, “대둔산(大屯山) 석천암(石泉庵)이라는 곳에서 야산 선생님을 모시고 주역을 공부합니다” 하고 답하니, 젊은 사람이 잘 하는 일이라고 격려하시고 저 윗방에 가서 공부하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라고 해서 윗방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때 저는 스무살이었고 그들은 서른이 넘은 사람들이었데 상투하고 한복차림에 앉아서 ‘춘추좌전’ 등 수준 높다는 글들을 읽고 있었어요. 그런데 앉기가 무섭게 이 사람들 하는 말이 “젊은 사람이 어디 가서 주역공부한다고 하지 말라. 주역은 동양 최고의 학문이고 성인이 쓴 글인데 머리 깎고 양복 입고 주역을 공부한다고 하면 성인을 모독하는 일이다”라고 경시하는 거예요. 그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퍼뜩 “易은 變易이니 隨時變易하야 以從道也라, 즉 주역은 변하고 바뀌는 것인데 때를 따라 변혁을 하되 그 원칙의 도는 따라야 한다”는 주역서문의 글귀가 떠올라서, “나는 주역을 공부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주역에 있는 말 그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머리를 깎고 양복을 입으니 머리 깎고 양복 입는 것은 주역에서 하는 말과 같이 수시변역할 뿐이고 그러나 함부로 따르지 말고 원칙은 지키라는 종도(從道), 즉 도를 따르기 위해 성인의 글이요 동양 최고의 학문인 주역을 공부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머리 깎고 양복 입은 것은 수시변역이요, 주역을 공부하는 것은 종도입니다” 하니 아랫방 현산 선생님이 그 말을 듣고 “거기 윗방에 있는 젊은 친구! 내려와서 나하고 얘기해야지 거기는 서로 상대가 안 된다” 하시어 아랫방으로 내려가 무릎 꿇고 앉아서 그날 심야토록 많은 걸 배웠습니다.
사실 때는 바뀌는 것이지요. 밤이 변하면 낮이 되고 낮이 바뀌어서 또 밤이 되고 봄이 여름으로 바뀌고 여름이 가을로 바뀌고 가을이 겨울로 바뀌고 겨울이 다시 봄으로 바뀌는 것 아니겠어요? 이렇게 바뀌는데 밤을 낮으로 알거나 낮을 밤으로 알아도 안 되고 봄을 가을로 알아도 안 되고 가을을 봄으로 알아도 안 되지요. 다만 어두운 밤에 불을 켜놓고 낮을 밝게 연장할 수는 있는 겁니다. 또 겨울 추위에 온실을 만들어 따뜻하게 지낼 수 있고 여름에 냉방을 만들어 서늘하게 지낼 수 있는 것입니다.

후천개벽시대 주역의 역할

주역의 수시변역은 때는 바뀌니까 바뀌는 그 때를 따라서 능동적으로 대처하면서 원칙을 따라야만 한다는 바로 이런 말입니다. 너무 시류에 빠져들어 영합해도 안 되지만 그 시류를 거슬러도 안 되는 것이지요. 가령 말이라는 것은 그 나라의 혼인데 자기 나라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세살배기 아이한테 자기 나라 말을 먼저 가르쳐야 하는데도 영어나 외국어를 가르치거나 하면 그것이 내 혼을 빼버리고 남의 혼을 집어넣는 것 아니겠어요? 수시변역을 하되 그것이 원칙에 어긋나지 않고 바르게 따르도록 해야 한다 바로 이겁니다.
주역에서는 지금 시대를 대과(大過)의 시대, 즉 너무 지나친 때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本末이 弱이라, 시작과 끝이 허약해져서 흔들리고 있다”고 하였지요. 이것은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안으로 근기를 기르지 못하고 정신적 지주가 확고히 서지를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5000년 전의 주역입니다만 오늘날 과학문명의 시대에 그 주역을 가지고 탄탄한 주춧돌을 깔고 튼튼한 기둥을 세운 뒤에, 현대문명을 받아들여서 서까래를 올리고 집을 짓는다면 안으로 견실한, 영원무궁한 집이 될 것 아니겠어요?
지금이 사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입니다. 봄은 왔는데 봄을 잘 몰라요. 그건 정신문화가 꽃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말씀드린 바와 같이 최고의 정신문명인 주역을 다시 이 세상에서 공부해서 그 문화가 꽃을 피운다면 이야말로 금상첨화이고, 만화방창의 봄을 맞이하는 것이지요.
그릇에 담아야 하는데 그릇이 작으면 넘쳐흐르기 마련입니다. 담을 그릇도 없이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문제지요. 안으로 동양적이고 정신적인 그릇을 키워가지고 밖으로 서양적이고 물질적인 문명을 담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후천의 개벽시대가 열리는데 우리가 옛날 5000년 전의 기본적인 학문을 공부하고 정신적 지주를 튼튼히 해서, 그 기반 위에다 과학문명을 받아들여 후천시대라고 하는 2000년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아서 이만 마치겠습니다. 문명의 전환기에 왜 주역인가 하는 것을 제 나름대로 “이래서 주역입니다”라고 간단히 답을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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