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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과 빌게이츠
 관리자  07-25 | VIEW : 2,215
진시황과 빌게이츠
표준화 戰略으로 천하통일한 두 황제

이언오삼성경제연구소 이사

21세기는 標準의 시대이다. 세계가 하나의 시장과 정보망으로 통합되면서 표준화 영역이 확장되고 표준의 위력이 막강해질 전망이다. 패권국 내지 강대국은 자국의 법제도를 다른 나라가 사용하도록 강요할 것이며 경쟁에서 이긴 소프트웨어와 통신네트워크는 업계 표준으로 자리잡게 된다. 표준을 장악하는 기업은 기회 선점과 함께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
2천년 전 엄격한 법치, 즉 국가운영의 규격화를 통해 부국강병에 성공했으며, 통일 후에는 도량형 등 표준화를 추진한 진시황. 컴퓨터 운영체제의 표준을 장악하여 거대한 富를 쌓아올린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두 사람을 표준으로 천하를 통일한 황제다. 둘의 인물비교를 통해 표준의 중요성과 그들의 경영철학을 알아본다.

법치로 강국 된 진나라

진시황이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진나라는 법가를 채택하여 통일의 기초를 닦았다. 기원전 4세기에 상앙의 개혁, 소위 변법(變法)을 시행해 진나라는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당시 진나라는 중국 서쪽 변방의 후진국가에 불과하였다. 후진국가였기 때문에 전통이나 구질서에 대한 애착이 없었고 개혁에 반대하는 기득계층의 반발도 적었다.
법가 사상가인 상앙은 시대 요구에 맞는 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이때만 해도 국가 통치 원리가 이원화되어 있었다. 평민이 잘못을 범하면 법으로 엄벌했지만 귀족은 잘못을 저질러도 예로 다스린다는 명목으로 처벌을 면했다. 상앙은 왕권강화책의 일환으로 귀족이든 평민이든 법을 적용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물론 귀족계층은 이런 변화에 강하게 반발했다. 상앙은 가벼운 죄를 범한 왕자를 법대로 처벌함으로써 법에는 예외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후 진나라에는 법치 원리가 정착되고 왕권이 강화되었다.
다른 나라들도 이러한 개혁 요구를 느끼고 있었다. 초나라에서는 ‘이소’라는 시로 유명한 굴원이 개혁을 추진하다가 귀족들의 반발로 실각하기도 하였다. 전국 7웅 중에서 진나라만이 개혁에 성공하였다.
상앙의 개혁 이후 진나라는 전국민에 대한 징병이 가능해졌고 유목민의 전투기술을 도입해 군사력을 강화했다. 문벌이 폐지되어 능력 위주로 인재를 등용하는 관행이 정착되었다. 특기할 것은 전국민 호적제도를 시행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조세나 징병의 근대화를 의미하는데 로마의 아우구스투스가 호적제도를 실시한 것보다 2백년이나 앞서고 있다. 전국민 호구조사는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귀족 세력이 강했던 진나라의 경쟁국들은 이 제도를 시행할 수 없었다. 이들은 국가자원의 동원 능력 측면에서 진나라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진나라의 법치는 국가에 원칙과 기강이 섰음을 의미한다. 귀족과 일반 국민의 자율성을 억제하고 왕이 국가 통치의 기준을 제시하고 강제하였다. 힘이 왕에게 집중되어 효과적으로 국론을 통일하고 역량을 결집시킬 수 있었다. 그밖에 왕을 비롯한 지도층의 솔선, 널리 인재를 구하는 포용성, 탁상공론보다 실리를 중시하는 분위기 등도 진나라를 강하게 만든 요인이었다.

진시황 통일 후 국가표준 설정

진시황(BC 259∼210)은 아버지인 장양왕이 갑자기 죽게 되어 13세에 왕위에 올랐다. 진시황 탄생에 얽힌 이야기는 너무나 극적이다. 장양왕은 조나라에 볼모로 가 있다가 당대의 거상 여불위의 눈에 띄었다. 여불위는 "이것은 기화(奇貨)로다. 사 둘 만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재력을 총동원하여 별볼일 없던 장양왕을 결국 진나라의 왕으로 등극시켰다. 요즘으로 말하면 벤처 투자를 하여 크게 성공한 셈이다.
진시황은 왕위에 오른 후 한동안 생모와 여불위의 그늘에 가려 있었으나 이들을 제거하고 무소불위의 지위를 확립했다. 진시황은 법가정책을 더욱 가다듬어 힘을 길렀다. 이사와 같은 유능한 재상을 등용하였고 한비자의 사상에 심취하였다.
한비자는 특히 조세를 기근과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 하여 중시했다. 진시황은 29세(BC 230)에 통일전쟁을 시작하여 9년 후인 38세(BC 221)에 제나라를 마지막으로 멸망시키고 통일을 완수하였다. 약한 국가를 먼저 공격하고 나머지는 회유와 이간질로 연합하지 못하게 했다. 약소국들은 합종연횡을 통해 대항하기도 했지만 자국이 1차 공격 대상이 되지 않도록 진나라의 눈치를 보는 데 급급했다.
국경이 없어져 문물이 통하게 되는 것이 표준으로 가는 출발점이다. 지금과 비교하면 운송 및 통신의 수준이 현저히 낮았지만 어쨌든 진시황이 중원을 통일함으로써 국가 전체에 하나의 규칙이 통용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통일 후에는 각국의 왕을 폐하고 36군을 설치, 지사들을 파견해 중앙집권제를 완성했다. 진나라에서 출발한 법치가 중국 전체로 확장되었다 하겠다.
그 다음 국내의 모든 성벽을 파괴하고 경계선을 없앤 후 군현제를 시행했다. 통일 이후 하나의 국가가 출현했지만 제도, 풍습과 마인드는 제각각이었다. 진시황은 정치적 통일 이후 국가 표준을 확립하는 데 주력했다. 진시황의 위대성은 바로 이 표준의 통일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길이·부피·무게 등 일상생활의 규격을 통일했다. 도로의 폭, 수레바퀴의 크기 등을 통일하여 서로 통하고 어긋남이 없게 하였다. 10월을 정월로 하는 진나라 역법도 확대 시행했다. 특기할 점은 진나라의 것을 무조건 밀어붙이거나 다른 나라의 도량형을 없애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것을 만들거나 각국의 도량형을 사용하되 환산율을 엄격하게 적용했다.
다음 문자를 통일했다. 당시 비석에 새기던 글씨체인 대전체가 사용되고 있었는데 문자가 너무 번잡하여 행정 업무의 증가를 따라갈 수 없었다. 이에 죽간에 쓰기 편한 필기체인 소전체를 개발했다. 이것이 오늘날 중국 한자의 원형이 되었다. 새로운 필체를 보급하기 위해 전국의 행정 중심지에 비석을 세우고 거기에 소전체 문자를 새겨 누구든지 볼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사상 통일을 추진하여 분서갱유를 단행했다. 흔히 생각하듯 법가를 제외한 모든 사상을 탄압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의학서 등 실용서적은 남겼고 진나라 정권에 반대한 일부 학자들을 살해하였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도로와 운하를 만들고 만리장성을 축조하여 기본적인 인프라를 갖추었다. 진시황이 만든 도로는 당시 유행하던 판축공법으로 만들어졌는데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무가 자라지 않고 있다. 간선도로는 그 폭이 50m이며 중앙의 7m는 황제 전용 도로, 바깥쪽은 일반 도로로 되어 있다. 고속도로의 인터체인지처럼 지정된 곳에서만 횡단할 수 있게 했다. 왕복 8차선인 경부고속도로의 폭이 38m인 점을 감안하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천하를 통일하고 그보다 더욱 어려운 표준 통일을 완수한 진시황은 말년에 영생불사를 추구하다 49세에 죽었다. 진나라는 진시황이 죽고 나서 불과 4년 후인 BC 208년에 멸망했다. 진시황이라는 구심점이 사라지고 조정이 분열되면서 강압과 군사력에 의한 지배의 중심축이 일거에 무너져버렸다. 물류와 통신, 사정거리가 긴 무기가 발달하지 못하여 지방의 반란을 제압할 수 없었던 것도 멸망을 재촉하였다. 통일 후 진시황이 표준을 제창하기는 했지만 이것이 제국을 지켜주지는 못했다.

빌 게이츠 운영체제 독점 장악

진시황은 다음 2천년을 이어갈 중국의 토대를 만들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제국이 등장했지만 한번 멸망하고 난 뒤 다시 부활하지 못했다. 로마·비잔틴·사라센·몽고·티무르 등이 대제국을 건설했지만 지금은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만이 진시황 이후, 무수한 분열과 이민족의 침입을 겪고서도 오늘날까지 단일 국가로 남아 있다. 진시황이 그만큼 강력한 표준의 인프라를 깔아 놓았기 때문이다.

정보혁명은 20세기 중반부터 가속도가 붙었다. 탄도 계산을 목적으로 컴퓨터가 출현했고 곧이어 반도체가 개발되었다. IBM이 360이라는 대형컴퓨터의 표준을 제시하면서 일단 업계를 평정하는 듯했다. 그러나 70년대 마이크로 프로세서가 등장하여 칩 하나가 컴퓨터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추어들은 취미로 개인용 컴퓨터, 즉 PC를 제작하는 데 열을 올렸다. 빌 게이츠는 이같은 PC산업의 태동기에 참여하는 행운을 누렸다. 빌 게이츠와 그가 세운 마이크로소프트는 PC산업의 중심에 서서 막대한 부가가치를 독점적으로 차지할 수 있었다.
일부 컴퓨터업체는 지금도 소프트웨어에 대한 개념이 빈약하다. 하물며 70년대 중반에는 아무도 PC의 가능성과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에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빌 게이츠와 몇몇 천재들만이 정보혁명의 냄새를 맡았다. 1955년생인 빌 게이츠는 십대에 컴퓨터 버그를 찾아내는 아르바이트를 했을 정도로 컴퓨터 실력이 대단하였다. 빌 게이츠와 친구인 폴 앨런은 75년 우연히 잡지 표지에서 초보 PC '알테어'를 발견하고 필생의 업을 예감했다.
그들은 첫 사업으로 ‘알테어’에 사용될 베이직 언어를 8주만에 개발하여 판매했다. 이어서 빌 게이츠는 하버드대 수학과를 중퇴하고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78년 시애틀 근처로 이사할 무렵에는 베이직이 사실상 산업표준이 되어 있었다.
이같은 명성을 바탕으로 컴퓨터업계의 공룡 IBM으로부터 새로 개발된 PC의 운영체제 개발을 의뢰받았다. 운영체제(Operating System)는 사용자가 컴퓨터 장치들을 작동할 수 있게 해주는 기본 프로그램이다. 나중에 드러났지만 운영체제를 장악하는 것이 소프트웨어, 나아가 정보산업을 지배하는 핵심적인 관건이다. MS-DOS는 원래 빌 게이츠의 작품이 아니었다. 시애틀 컴퓨터로부터 사들인 Q-DOS를 조금 고쳐 IBM에 판매한 것이다. 어쨌든 81년 발매된 IBM PC가 성공을 거두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일약 소프트웨어업계의 신데렐라로 부상했다. 빌 게이츠는 IBM 이외의 PC에 대해서 MS-DOS를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 이것이 후에 마이크로소프트 왕국을 건설하는 초석이 되었다.

80년대에는 IBM의 명성을 기반으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가 세계 PC 시장을 주도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85년 복잡한 명령어 대신 마우스로 간단하게 조작하는 윈도 운영체제를 발매했다. 앞서 애플이 매킨토시에 유사한 방식을 도입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모방한 것이다. 나중에 애플이 지적재산권 침해라 하여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소하였으나 결과적으로 흐지부지되었다. 애플도 제록스 팔로알토연구소의 성과물을 모방했다고 밝혀진 것이 결정적 이유였다.
IBM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에 자극받아 새로운 운영체제인 OS/2 개발에 착수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IBM과 공동으로 OS/2를 개발하면서 한편으로 윈도의 개량에 주력했다. IBM은 마이크로소프트가 OS/2보다 윈도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고 불평했다. 그러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미 운영체제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IBM은 전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7년에 걸친 주도권 다툼은 92년 윈도 3.1이 등장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완승으로 끝났다. IBM은 계약위반 등을 내세워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항했으나 시장은 윈도 중심으로 재편되어 버렸다.
운영체제를 확실히 장악한 빌 게이츠는 이를 발판으로 응용소프트웨어, 네트워크와 인터넷으로 뻗어나갔다. MS-DOS에서 데이터와 프로그램을 사용했던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호환성이 있는 윈도를 구입하였다. 엑셀·파워포인트·MS 워드· 익스플로러 등은 물론 좋은 소프트웨어들이지만 운영체제의 독점적 기반이 없었더라면 시장을 장악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연간 50억달러 매출 중 3분의 2가 각종 응용소프트웨어 판매에서 발생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현재 운영체제의 90%, 응용소프트웨어의 25%, 웹브라우저의 60% 정도를 장악하고 있다. 황금알을 낳는 소프트웨어산업에서의 독점은 빌 게이츠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 주었다. 지금도 전세계 PC에 사용되는 운영체제로부터 막대한 기술사용료를 거둬들이고 있다. 정보혁명이 인터넷 빅뱅으로 이어지고 있어 빌 게이츠의 부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생산품목 1개, 사원 3명으로 출발했던 25년 전 연간 수익은 1만6천달러에 불과했다. 99년 11월 기준 마이크로소프트의 시장가치는 4천5백억달러, 빌 게이츠의 자산은 9백30억달러로 평가된다. 정보혁명이 40대 중반의 한 남자를 세계 최고의 부자로 만들었다.
빌 게이츠는 표준을 장악하여 승자가 되었다. 일부 학자들은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해 기술력이 떨어지는데도 산업표준을 선점함으로써 경쟁사들을 제압했다고 비판한다. 초기 윈도와 매킨토시를 비교해 보면 분명히 맞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뛰어난 기술을 갖고서도 표준 장악을 게을리하면 여지없이 도태당하는 것이 바로 표준경쟁의 특징이다. 많은 기업들이 PC 운영체제의 표준을 장악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제록스·IBM·애플·AT&T·디지털리서치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표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역사 속에 묻혀 버렸다.
예를 들어 디지털리서치의 게리 킬달은 빌 게이츠와 동일선상에서 출발하였다. 오히려 조금 앞서 있었다고 봐야 한다. 게리 킬달은 70년대말 8비트 운영체제를 정복했던 인물이다. 당시 미국 PC업체들은 각기 독자 규격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호환성이 없었다. 사용자들은 다른 기종을 사용하려면 새로 교육받아야 했다. 게리 킬달은 CP/M이라는 탁월한 운영체제를 개발하여 이 문제를 일거에 해결했다. 2천여개가 넘는 PC업체들이 CP/M을 사용하여 이 프로그램이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게리 킬달이 비상의 날개를 펴지 못하고 추락한 것은 IBM PC의 출현과 관계가 깊다. IBM 경영진이 운영체제를 개발해 줄 소프트웨어업체를 물색하던 중 당시 업계표준을 장악하고 있던 디지털리서치를 방문했다. 우연히 IBM 인사들이 찾아왔던 날 게리 킬달은 자리를 비웠다. 그를 대신하여 IBM 사람들을 맞이한 부인은 IBM이 얼마나 엄청난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인지 깨닫지 못했다. 회의 내용의 비밀 준수 등 IBM이 제시한 조건들을 수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계약을 거부했던 것이다. 게리 킬달 대신 기회를 잡은 것이 빌 게이츠였다. 두 사람은 외모에서 게리 쿠퍼(게리 킬달)와 우디 앨런(빌 게이츠)에 비유되기도 한다.
로터스 1-2-3·워드퍼펙트·넷스케이프 등의 소프트웨어는 빌 게이츠의 탐욕스러운 영토확장 과정에서 희생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모두 특화된 분야에서 업계표준으로 먼저 자리잡고 있었다. 웹브라우저의 경우 95년말 넷스케이프의 점유율은 79%, 마이크로소프트의 익스플로러는 겨우 4%에 머물렀다. 4년이 지난 지금 그 비율은 40%대 60%로 역전되었다. 운영체제의 독점력을 내세운 빌 게이츠의 공격 앞에 무릎을 꿇은 예다. 빌 게이츠가 승승장구하는 동안 패잔병의 잔해는 늘어만 갔다.
빌 게이츠는 시장을 선점하고 표준을 장악하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했다. 80년대 초 MS-DOS를 무료로 뿌리고 무단 복제를 허용하여 소비자들이 MS-DOS에 길들여지도록 했다. 다음 제품은 물론 돈을 주고 살 수밖에 없었다.
신제품을 미리 홍보해 고객들이 경쟁사 소프트웨어를 구입하는 것을 막았다. 버그가 있는 불완전한 상태에서 출시하고 사용자들의 불만이 터져나올 때쯤 개선된 제품으로 교체해 주기도 했다. 기술완성도보다 스피드를 우선했던 것이다.
끼워팔기, 대량 할인 등 경쟁사들로부터 불공정 거래라고 비난받은 수법들도 다수 동원되었다. MS-DOS에 윈도 초기 버전을 끼워 판매하되 가격은 MS-DOS와 동일하게 책정하는 식이다. 개별 소프트웨어가 아닌 프로세서별로 기술료를 받기도 했다. 통합오피스는 패키지로 제공되어 사용자의 선택 폭을 줄였다. 타사의 운영체제가 깔려 있는 PC에는 기술지원을 거부하는 교묘한 전략을 구사했다. 끝없이 팽창하는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해 미국 정부는 80년대 말 독점과 불공정 거래 관련 조사를 시작했다. 94년에는 법무부가 운영체제의 판권과 가격을 조정하도록 명령했다. 얼마 전 마이크로소프트는 은행을 인수하려고 했다가 저지당했다.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인터넷뱅킹 전용 프로그램을 판매하고 있는데, 이 서비스를 사용하는 고객들은 소프트웨어업체만을 기억한다고 한다. 미국 정부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은행을 인수할 경우 윈도 운영체제를 통해 금융산업마저 장악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무엇보다 지난 99년 11월5일 미국 정부와 19개 주정부가 1년 전에 제기한 소송의 최종 판결이 마이크로소프트에게 가해진 가장 강력한 충격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독점력을 이용해 시장경쟁을 붕괴시켰다고 인정되었다. 마음대로 가격을 책정했으며 시장지배력과 수익력을 경쟁사 제압을 위해 부당하게 동원했다는 혐의다. 마이크로소프트에는 분리 판매, 윈도 소스코드 공개, 기업분할 등의 조치가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독점회사였던 AT&T가 80년대 분할된 것과 유사한 형태다. 年봇楊맛擔붉가 5명의 반독점 전문가에게 문의한 결과에 따르면 3명은 분할, 2명은 소스코드 공개를 해결책으로 제시하였다. 항소할 것이어서 결말은 수년 후에나 나겠지만 마이크로소프트가 표준을 장악하고 독주하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공적표준과 사실상 표준

빌 게이츠는 지난 4반세기 동안 신화를 일구었다. 정보혁명을 촉진시키고 그 대가로 엄청난 부를 얻었는데 이제 독점을 반발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빌 게이츠가 발간한 "생각의 속도" 책을 빗대어 ‘독점의 속도’라는 말이 등장했을 정도다.
초창기 개척의 공적은 인정하면서도 시장이 너무 커져 운용체제를 공공재로 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PC업체인 아세르 아메리카의 마이클 컬버 부사장은 "어느 누구도 혼자서는 디지털 혁명을 주도할 수 없다. 어떤 형태로든 서로 부대끼고 의지하면서 혁명을 이끌어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표준화의 과실을 나누어 가질 때가 된 것이다.
진시황과 빌 게이츠가 장악한 표준은 그 성격에서 큰 차이가 있다. 표준에는 ‘공적 표준’(De Jure Standard)과 ‘사실상 표준’(De Facto Standard)의 두가지가 있다. 전자는 국가 등의 권위에 의해 강제되는 표준화된 법제도이며, 후자는 시장 경쟁을 거쳐 정착되는 기술적 표준이다. 진시황이 ‘공적 표준’의 화신이라면 빌 게이츠는 ‘사실상 표준’의 전형이다.
’공적 표준’은 국가나 기구의 권위에서 유래한다. 진나라가 법치를 시행한 것이나 진시황이 도량형을 통일시킨 것이 이에 해당한다. 상앙이 귀족들에게도 동일한 법을 적용시킨 것은 계층간 표준화로 볼 수 있다. 진시황이 다른 국가들을 차례로 멸망시키자 표준은 국경을 넘어 확산되었다. ‘공적 표준’은 진시황과 같은 강력한 독재자가 존재할 때 일사불란하게 성립된다.
생활의 편리성, 국가운영상의 효용이 인정된 부분은 후대에 계승되었다. 독재자가 사라지고 권위가 무너지자 표준 독점에 대한 반발은 각지의 반란으로 나타났다. 중앙집권적으로 기업을 경영하거나 국가를 통치할 때는 ‘공적 표준’이 효과적이다. 구성원은 법제도의 테두리 내에서 예측 가능한 행동을 한다. 소위 질서와 기강이 서는 것이다. 대내외 환경에 따라 ‘공적 표준’을 제대로 변화시키고 그것도 구성원의 합의에 근거할 수 있다면 바람직한 일이다.
그렇지만 법제도란 것이 원래 경직적이어서 시대에 맞지 않고 선량한 다수에게 피해를 입히면서도 장기간 고착화되기 쉽다. 과도한 ‘공적 표준’은 자발성과 다양성을 저해한다. 민주적 절차가 아닌 권위에 의해 유지되는 ‘공적 표준’은 구심력이 약해지면 즉시 쇠락한다.
’사실상 표준’은 시장경쟁에서의 승리로 출현한다. 빌 게이츠는 경쟁자들을 차례로 제압하고 아예 신규 진입이 불가능하도록 장벽을 높게 쌓았다. 다른 업체들은 초기 태동기에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이후 PC의 성능 개선, 응용분야 확장, 인터넷 확산 등 트렌드에 대응하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본질적인 것은 사용자들이 빌 게이츠의 제품을 운영체제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일부 마니아를 제외한 절대다수의 사용자들은 호환성과 편리성을 원했고 마이크로소프트만이 그것을 충족시켰다. 이제는 시장에서 견제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커져 국가권력이 동원될 정도이다.
같은 기능을 제공하면서 얼마든지 다른 표준이 적용될 수 있다. 초기에는 다양한 방식이 경합하지만 시장이 본격 형성되면 ‘사실상 표준’으로 통합된다. 사용자가 호환성을 중시하고 익숙해진 것을 고집하기 때문에 우수하지 않은 기술이 표준이 되기도 한다. 타자기의 QWERTY 자판 배열, VHS가 베타 방식에 이긴 것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표준은 시장을 확대시키고 대량생산으로 생산 코스트를 낮추며 사용자들의 효용을 높여 준다. 무엇보다 표준을 개발하고 표준경쟁에서 승리한 기업에 이익을 가져다 준다. 동시에 독점의 폐해를 낳는다. 자연적 독점과 마찬가지로 운영체제, 네트워크 등을 독점하는 것은 자칫 과도한 지배력과 수익을 보장하게 된다. ‘사실상 표준’은 기술변화에 경직적이라는 약점도 안고 있다. PC를 대체하는 신개념 기기, 인터넷에 기반을 둔 운영체제 등이 언제든지 출현할 수 있다.

표준으로 본 진시황과 빌 게이츠

진시황과 빌 게이츠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우연이지만 두 사람은 20세 이전에 뜻을 세우고 40세를 전후하여 천하를 제패했다. 진시황이 역사상 첫 황제로 기록된 것과 마찬가지로 瑙맛幢지는 올해의 인물로 빌 게이츠를 선정하고 ‘우주의 지배자’(the Master of the Universe)라고 별칭을 붙인 적이 있다. 널리 인재를 활용하고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유한 점 등도 유사하다.
두 영웅이 표준을 개발하고 확장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전략은 기업 경영에도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공적 표준’과 ‘사실상 표준’ 모두 기업들이 당면한 현안이다. 국내 기업들은 미국식 글로벌 스탠더드, WTO체제, 정부정책 등 ‘공적 표준’에 대응해야 한다. 그리고 소프트웨어, 디지털기기, 시스템 설계 등에서 ‘사실상 표준’을 주도하여 유리한 고지를 선점해야만 한다.
첫째, 무기가 되는 표준을 개발해야 한다. 진시황은 상앙의 개혁으로 뿌리내린 법치체제를 통일사업으로 연결시켰다. 빌 게이츠는 경쟁력 있는 운영체제를 구입, 개발·개량하여 주도권을 장악했다. 21세기 초는 글로벌화와 표준화가 한층 심화될 것이다. 표준의 냄새를 맡고 공격적으로 프론티어에 나서는 기업만이 승리한다.
IMF사태 이후 우리의 정체성을 비하하면서 미국식으로 기울어지고 있는데 표준이라는 시각에서 볼 때 이는 실패로 가는 길이다. 고유한 시스템과 외래 제도를 결합해 우리에게 강점이 되면서 세계에 통용되는 방식을 창안할 필요가 있다. CDMA·MPEG 등와 같이 세계 표준으로 채택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나가야겠다.
둘째, 초기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 진나라는 험준한 지형으로 다른 나라의 공격을 쉽게 막을 수 있었다. 법치가 정착되고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이 존재했다고 하겠다. 빌 게이츠는 베이직 언어, IBM PC의 운영체제를 통해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무료 배포, 불완전한 제품의 조기 출시 등은 서둘러 표준을 선점하기 위한 것이었다.
국내 기업은 고유의 강점이 있는 제도를 정립하고 사내와 국내에서부터 표준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와 협력하여 회계·조세·환경 등 글로벌 스탠더드의 수용이 시급한 부문을 우선 변화시키고 다음 적용 부문을 넓혀가야 한다. ‘사실상 표준’은 조기 출시, 대형 고객 확보, 공격적 마케팅 등으로 시장을 선점하는 것도 중요하다. 표준에서 경쟁자가 될 가능성이 있거나 앞서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제휴 혹은 인수를 제의하도록 한다.
셋째, 표준의 힘을 이용하여 영토를 확장해 나간다. 진시황은 주변의 약한 나라부터 차례로 멸망시켜 통일을 이룩했다. 초나라를 지나는 강의 상류에 있는 촉을 먼저 공격했다.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가면서 공격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빌 게이츠는 PC의 중심에 있는 운영체제에서 출발하여 주변으로 뻗어나갔다. 이때 운영체제에서 벌어들이는 자금과 소스 코드를 장악한 데 따른 기술적 우위를 십분 활용할 수 있었다.
국내 기업은 특유의 인사제도나 관리체제를 해외 공장에 이전시키거나 인수한 기업에 이식시킬 수 있다. 탁월한 연구개발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면 성공의 경험을 새로운 사업분야로 이어나간다. ‘사실상 표준’을 적용한 제품의 점유율을 높이거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은 PC 운영체제와 같이 표준이 강력해야 가능한 일이다. 표준의 독점력이 약하다면 코스트·브랜드 등 비표준 수단들을 동원해야 한다.
넷째,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아웃소싱을 적절히 배합한다. 대적할 국가가 없었던 진나라였지만 상당 기간 교묘한 외교를 구사했다. 약소국들이 뭉치는 것을 막아 전쟁기간을 줄이고 손실을 최소화했다. 또한 국적과 출신을 불문하고 경륜이 있는 인재를 널리 구하여 국가 역량을 극대화했다. 빌 게이츠는 IBM의 지원으로 PC의 최초 표준에 참여하였다.
IBM PC 호환업체들이 마이크로소프트 운영체제를 탑재했기 때문에 빌 게이츠는 네트워크의 심장부에 설 수 있었다. 애플은 1994년에야 자사의 운영체제를 다른 회사 하드웨어에 탑재할 수 있어 기회를 상실했다. 빌 게이츠는 Q-DOS·파워포인트 등 좋은 소프트웨어가 눈에 띄면 저작권을 사들였다.
업계 차원에서 회계기준, 윤리코드 등을 마련하고 국제기구에 전향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아시아권에 맞는 ‘공적 표준’을 제안하고 역내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요구된다. ‘사실상 표준’에서는 설계, 디자인, 소프트웨어 등의 기준을 개발하고 참여 기업을 늘려야 한다. 부품을 공용화하고 납품 관계를 개방형으로 바꾸면 조립산업의 경쟁력이 한 차원 높아진다.
마지막으로, 표준을 방어하고 오만을 경계해야 한다. 진시황이 죽은 이후 진나라는 즉시 멸망했다. 진시황대에 후계자가 통치할 수 있는 법제도를 준비했더라면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유능한 후계자를 선발하고 천하 인재가 그를 보필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했던 것이다. PC에서 출발한 빌 게이츠의 표준도 영원할 수 없다.
넷스케이프와의 경쟁에서 빌 게이츠는 크게 고전하였다. 개인용 단말기인 PDA에서는 아직 표준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독점 인정 판결 이후 마이크로소프트 주가는 5% 정도 하락하였다. 국내 대기업들은 나름의 표준을 방어하지 못하면 몰락할 위기에 처했다. 정부 금융기관과의 관계, 내부시장, 독과점 지위 등이 모두 위협받고 있어 역동적이면서 투명한 기업 시스템을 창조해내야만 한다.
일부 세계 톱을 차지했거나 점유율이 높은 업종은 특허소송, 환경문제 등에 신경써야 한다. 이미 구축한 표준을 방어하면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분야로 확장해가는 전략도 가능하다.

효율적·윤리적이어야 할 표준

역사는 표준을 둘러싼 투쟁의 과정이며 진시황과 빌 게이츠는 그 가운데 우뚝 솟은 승리자들이다. 앞으로 물리적 장벽이 엷어지고 가상세계가 열리면서 글로벌 차원에서 표준화가 한층 가속화될 것이다.
21세기에는 표준 장악을 둘러싼 대격돌이 예상된다. 우리는 표준경쟁에 나서는 것은 고사하고 국론이 분열되어 있고 외국 제도를 어슬프게 따라가는 중이다. ‘사실상 표준’을 장악하지 못했고 핵심 그룹에 들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태로는 미래가 없다. 효율적 표준을 만들어내고 앞선 표준은 적극 도입해야 한다. CD가 소개되었을 당시 LP를 선호하는 연주자들이 MAD(Musician against Digital)라는 단체를 조직하여 활동한 적이 있다. 디지털이 아날로그 음악의 순수성을 해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디지털은 음악의 표준이 되었으며 영상까지 거의 장악하였다. 권위주의, 불투명성, 부패 등은 조속히 없애야 할 구시대 표준이다. 사용되지 않는 기술방식에 집착하거나 모방에 급급해서도 안된다. 미래 표준에 눈을 돌리고 핵심부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표준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진시황과 빌 게이츠가 표준을 통해 제국을 건설했듯 21세기에는 또 다른 표준의 기회가 도래할 것이다.
특히 과거의 표준이 야기해온 독점과 획일성의 폐해를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표준의 등장이 기대된다. 빌 게이츠가 가장 무서워하는 상대는 올해 29세의 핀란드 젊은이가 개발한 리눅스 운영체제다. 인터넷에서 무료로 다운로드받을 수 있고 개발 과정에 참여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용자가 전세계에서 1천만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독점을 통한 부의 추구에 반발하여 공유와 보람을 찾는 문화가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표준에서 소외된 국가, 기업과 개인이 힘을 합치고 서로 나누어 가진다면 그것이야말로 노자의 무위자연과 통하는 표준이 아닌 표준이다. 21세기 표준은 효율성에 윤리성을 가미한 방향으로 진화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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