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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금실 장관
 관리자  01-19 | VIEW : 2,678
[내면 인터뷰] 강금실법무장관 (월간중앙)


“나는 건달 끼 많은 사람, 정치는 안 해요. 장관 끝나면 놀고 싶어요”

남재일 자유기고가 (commat@freechal.com)


강금실 법무장관과의 대화는 풍요했다. 그는 단순하고도 복잡하고, 복잡하면서 투명한 인간이다. 이처럼 독특한 인간이 법무장관으로 대한민국 사법 시스템을 총괄하고 있다. 유례없는 현상이다. 공직사회의 ‘이효리’로 불릴 만큼 대중적 인기도 역시 ‘짱’이다. 그의 내면에는 무엇이 있는가. 어떤 열정이 그의 독특한 퍼포먼스를 추동하는가. 그의 10년지기 남재일 전 ‘중앙일보’ 기자가 강금실의 공직자론, 사랑론, 인생론의 내면을 심층 탐문했다.  


강 금실(康錦實·47) 법무장관을 처음 본 것이 대략 10년 전이다. 문화판 사람들의 모임이었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어서 그 자리의 좌장격인 분에게 누구시냐고 물었더니, “살풀이춤 추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그 자리가 끝날 때까지 그냥 국악 계통에서 일하는 사람이거니 생각했다.

그는 말이 거의 없었고, 남들의 얘기를 열심히 듣는 편이었다. 간혹 말을 할 때도 분위기가 정말 살풀이춤 추는 사람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 자리가 파할 때까지 그가 변호사라는 사실을 나는 몰랐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변호사라는 직업은 내게 구체적인 것에 대한 관심과 약간은 논쟁적인 어투를 연상시켰다.

그는 목소리부터 ‘논’(論)을 펼치기에는 가늘고 뜨겁고 습했다. 처연하게 깊은 사연을 읊조리면 어울릴 것처럼 보였다. 대화의 주제도 대개는 가까이 있는 사물보다 멀리 있는 이미지나 관념에 조준돼 있었다. 그런데, 변호사? 변호사라니!

이런 불균형 때문에 그는 질문하고 싶게 만든다. 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살까. 이런 경우 저 사람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런 저런 자리에서 얘기를 많이 나누게 되면서, 나는 그가 사람을 참 심심하지 않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별로 수다를 떨지 않아도 그는 사람을 대화에 집중시키는 묘한 능력이 있다. 그것은 그가 빈말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두 가지 유형의 얘기는 절대 안 한다. 첫째는, 자기 일 얘기를 먼저 꺼내는 법이 없다. 물으면 마지못해 “오늘 저녁에 민변 모임이 있다”고 말하지, “민변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관련 모임이 있는데 발제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또 하나, 그가 꺼리는 것은 자리에 없는 사람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는 비난이든 칭찬이든 남의 말을 꺼내면 무심하게 듣고 있다 길어지면 “인생 짧은데 남 말 하고 살 필요 있느냐”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 나는 나중에야 남달라 보이던 그의 대화 습관이 하나의 지향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됐다. 그가 자주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밀도”에 대한 집착이다.

창가의 겨울 햇빛 같은 女子

‘밀도’를 중시한다는 것은 결국 사람 자체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얘기다. 사람 사이를 매개하는 격(格)과 식(式)에 도착돼 있는 저밀도의 상태를 심심해하는 체질.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도 그의 상상력은 문체와 미장센(연출) 너머의 인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곧잘 발전한다.

‘이런 문체를 가진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저 영화감독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이런 식으로 그는 상상 속에서 한동안 르 끌레지오를 만나고, 기형도를 떠나보내고, 혼자 연애하기를 수십 회. 급기야 요즘은 오래 전 고인이 된 예수님과 문무왕까지 호명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이것을 “소녀 취향”이라고 표현했다. 확실히 그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는 소녀적인 순정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소녀들이 좋아하는 인물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언젠가 철학을 하는 지인 한 분이 “온화한 열정”이라는 표현으로 그를 요약했다. 한 소설가는 ‘햇볕에 데워진 냇가의 조약돌 같다’고 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창가의 겨울 햇빛’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어떤 말이든 그가 동파된 수도꼭지처럼 사방으로 침을 튀기거나 기차 화통처럼 요란하게 열을 뿜어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그는 선천적으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기보다 평범한 에너지를 돋보기처럼 하나의 초점에 집중시키는 쪽이다.

그 초점은 언제나 미세한 경계에 맞춰져 있다. 그는 격식을 싫어하지만 격식 자체를 싫어하는 아나키즘적 캐릭터는 아니다. 그는 격식이 위계를 구분짓는 권력의 확인 과정으로 동원되는 그 사용 맥락을 싫어할 뿐, 인간관계에서 격식이 갖는 효용을 무시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는 위장과 화장을 구분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화장을 빙자한 위장이 만연한 위선적 문화에서 이런 구분에 대한 열정은 언제나 저주받은 회색이 되기 쉽다. 그래도 그는 개의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장관에 취임하기 1년 전쯤, 평소 친한 소설가가 신촌에 카페를 개업해 인사차 함께 간 적이 있었다. 대개 이런 경우 적당히 술을 팔아 주고 덕담을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는 신촌 로터리에서 차를 세워 꽃집에 들렀다. 나는 그냥 가도 된다고 우겼지만, 그는 기어코 노란 장미 한 다발을 사 갖고 왔다.

그리고 1년 뒤에 TV에서 법무장관에 임명됐다는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대개 놀라워했고, 조금은 걱정도 한 듯하다. 전혀 정치적이지 않은데 어떻게 그 자리를 견딜까 하고…. 나는 한편으로는 호기심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저런 캐릭터의 사람은 그 자리에 가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변할까 하고 말이다. 그런 호기심 때문에 이 인터뷰를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10개월 사이 그는 대중적 인기인이 됐고, 뉴스메이커가 됐다. 파격적이라고 말하는 행동양식들이 그래도 대중들에게는 호의적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강효리, 강효리라고 하지 않는가. 그는 참 이상한 스타이고, 그를 지켜보는 대중들도 특이한 관중이다.
스타가 한 시대의 대중적 욕망을 대변하는 기호라면,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미처 수면으로 떠오르지 않았던 어떤 힘들이 그를 통해 분출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강효리라는 별명 전혀 불쾌하지 않아요”

인터뷰는 지난해 12월3일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강장관의 서울 삼성동 자택에서 진행됐다. 실내는 단순하게 필요한 가구만 제 자리에 놓여 있었다. 벽 여기저기에 걸린 초현실주의 풍의 그림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서가에 빼곡히 꽂힌 책들이 주로 무거운 사상서적들이라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업무에 시달린 탓인지 다소 피곤해 보였지만, 장시간의 인터뷰에도 지치지 않고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 다소 껄끄러운 질문도 별 주저 없이 유머를 섞어 가면서 되도록이면 직설적으로 말했다.

― 요즘 팬클럽도 생기고 지난번 서울대 강의에서는 사인 공세를 받는 등 인기가 절정입니다. 공직에 나가기 전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인기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인기의 비결이 뭘까요? 저도 왜 그런지 잘 모르겠어요. 긴장 안 해서? 무장해제하고 있어서? 그것은 사실 제가 물어봐야 하는 질문 아닌가요?”

― 최근 언론에서 강효리라는 별명을 사용해 불쾌한 감정을 표시했다고 신문에서 봤습니다. 아마도, 이효리의 인기를 빗대어 그런 것 같은데, 굳이 불쾌해할 이유가 있습니까. 연예인에 비유한 것 자체가 혹시 마음에 안 드셨는가요?

“그 이야기는 상당히 와전됐어요. 저는 전혀 불쾌하지 않아요. 이름 자체도 강금실보다 강효리가 더 마음에 들고…. 젊고 아름다운 스타에 비유되는 것이 불쾌할 이유가 없지요. 오히려 영광 아닌가요? 공보관이 종합 일간지에서 법무부 장관의 이름을 제목에서 강효리라는 별명으로 표현하는 것이 부적절한 것이 아니냐는 공식 입장을 밝힌 것이 그런 식으로 전달된 것이죠.

검사장 간담회 같은 공식 일정을 강효리가 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온당치 않죠. 그것도 본문 정도면 이해되는데, 제목에서 그렇게 표현한 것은 적절하지 못했다고 봐요. 제 개인적으로는 뭐라고 불리든 별로 신경을 안 써요. 인기가 있는지 없는지도 피부로 체감이 잘 안 되고, 멀리서 일어나는 어떤 일을 구경하는 느낌이 들어요.

‘굳세어라, 금순아’라고 불러도 마찬가지일 것 같고. 원래 그런 데 대해서는 상당히 무감각해요. …그런데, 연예계에는 관심이 좀 있었죠. 장관 하기 전에는 스포츠 신문 보는 것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바빠서 신문도 스크랩해 주는 것만 봐요. 그러니 신곡을 개발하지 못해 회식 자리에서 맨날 김광석 아니면 김추자만 부르죠.”

― 강장관 님의 인기에는 여성적 외모나 행동양식도 한몫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영상시대여서 외모도 상당히 중요하다고들 합니다. 사람을 볼 때 외모를 많이 보시는 편인가요?

“외모를 보는 편은 아니고요. 주로 느낌을 읽는 편이죠. 잘 생긴 이목구비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그냥 사람이 풍기는 전체적 느낌을 읽어요. 책에서 문체를 느끼거나 그림에서 어떤 화풍을 느끼듯 사람도 그런 것이 있어요. 지금 나이가 되니 사람이 살아온 과거의 경험이 외모를 통해 드러난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고요.


“나는 무대 체질은 아니다”

저는 눈빛하고 목소리를 주로 많이 봐요. 말버릇 같은 것도 무의식적으로 인격을 드러내는 부분이고요. 맑은 사람은 눈빛이 곧아서 사물을 쳐다볼 때 똑바로 쳐다봐요. 목소리는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데, 말투나 말꼬리 흐리는 대목, 그런 것을 보면 그 사람을 짐작할 수 있어요.

사람들은 대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원하는 얘기를, 자신이 살아온 방식대로 하는 것 같아요.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술자리에서도 어느 한순간 정치 얘기를 꺼내요. 얘기가 무르익으면 자신의 말버릇이 나오죠.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맑은 사람들이에요. 영혼이 맑은 느낌을 주는 사람들….”

― 사인 공세를 받으면 기분이 어떤가요? 스스로 스타 기질이 있다고 보십니까.

“왜 해 달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열심히 해 줘요. 사람들이 즐거워하면 못 해 줄 것이 뭐 있겠어요? 저는 별로 잃어버리는 것이 없는데 남이 즐거워하면 좋잖아요? 스타 기질이 뭔지는 모르겠고, 그냥 선천적으로 무대 체질은 아닌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 무대에서 떨어진 경험이 있어서 약간은 무대 공포증도 있는 것 같고….

6학년 때 상 받으러 단상에 올라갔다가 내려올 때 굴러 떨어졌는데, 전교생이 다 박장대소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해요. 그 이후로는 무대에 올라갈 때마다 그 생각이 났는데…. 왜 지금 이렇게 인생이 반전됐는지 나도 이해가 안 돼요. 사람하고 폭넓게 교제하고 그런 것은 로펌 대표할 때밖에 없어요. 그때는 하기 싫어도 업무상 해야 하니까 한 것이죠. 솔직히, 제가 공식적인 세계에 관심이 별로 없었어요.

신문을 읽어도 문화면과 만화만 열심히 보고, 정치면은 대충 이슈가 있을 때 훑어보는 정도였어요. 장관에 임용됐을 때도 노대통령의 측근이 누구인지도 자세히 모르는 상태였거든요. 문재인 수석만 변호사였으니 아는 정도였고, …그래요.”

― 지난번 국회에서 차도까지 걸어가시는 것을 봤다고 누가 그러던데요. 차편을 이용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운동 삼아 가능하면 많이 걸어 다니려고 해요. 하루에 20분씩 걷거나, 훌라후프라도 하려고 하죠. 요즘 회식 약속이 많아 많이 먹고, 신경은 늘 곤두서 있고, 운동은 안 하고… 그런 상태죠. 체중도 늘고 피로감도 심하고 해서 체력 관리를 위해 운동을 하려고 해요.

오늘도 총리공관에서 경복궁역까지 20분 걸었어요. 걷고 있는 시간만은 구경에 정신을 빼앗기니 휴식이 되거든요. 저는 원래 걷는 속도로 사물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해요. 천천히 걷는 속도에서 보는 사물이 가장 아름답거든요. 오늘도 삼청동길을 걸어 나오는데 눈길 끄는 가게도 많고 갤러리도 아름답고 그렇더군요. 가방 파는 가게에서 낙엽을 수북이 쌓아 가방을 전시해 놓은 곳이 있어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었어요.”

― 직무 이외의 시간은 어떻게 보내십니까. 문화생활에 관심이 많으셨는데, 요즘은 바쁜 와중에 어떻게 문화생활을 하시는지요? 그리고, 평소 어떤 장르에 특별히 관심이 많으셨는지….”

“요즘은 일정이 불규칙해서 문화생활을 거의 못 하죠. 맥주나 와인 한잔 마시고 쉬는 것이 전부죠. 체력이 달려 술도 못 마시겠어요. 문화예술은 특별히 장르를 가리지는 않아요. 대신 취향이 좀 강한 편이죠. 음악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맞는 것만 편식하는 편이죠. 어떤 장르든 예술 작품을 대할 때 작품에 있는 어떤 것을 내 안으로 끌어오기보다 내 안에 있는 것을 작품에서 찾아가는 방식으로 대해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죠? 그러니 취향이라는 것이 생기는 것 아니겠어요?”

“극한체험에 대한 유혹 때문에 법무장관 맡았다”

― 구체적으로 그 취향이 어떠신지 궁금한데요. 최근에 인상적인 작품으로는 어떤 것이 있었는지요?

“빽빽하게 밀도가 높은 것이 좋죠. 최근 김기덕 감독의 ‘섬’이라는 영화가 참 좋았어요. 뭔가 치열하고 진실에 접근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어요. 그런 치열함은 관객에게 불편함을 줄 수도 있겠죠. 사회적 권력관계로 엉킨 공간에서 그런 것을 걷어내 버리면 각질을 벗겨낼 때처럼 아프지 않겠어요?”

― 사람들이 승무 실력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요즘도 춤을 추시는지요? 그리고, 전통춤의 어떤 면이 좋아서 배우셨는지, 그것도 어떤 행위의 밀도하고 관계가 있습니까.

“춤은 그냥 추고 싶어서 배웠죠. 승무문화재이던 한영숙 선생 제자한테 배웠어요. 1985년부터 88년까지 부산에서 근무할 때 김수악 선생에게 살풀이하고 궂거리 춤도 배웠고요. 원래 춤 추는 것을 좋아해서 막춤도 추고 그래요. 전통춤을 좋아하게 된 것은 정신이 깊이 몰입되지 않으면 안 되는 춤이어서 거기에 끌렸어요. 오래 추면 호흡도 깊어지고 명상하는 것과 비슷한 상태가 돼요. 몰입이라기보다 정확하게 모든 것을 잊고 빠져야 하는 춤이죠. ”

― 법무장관에 임용됐을 때 다들 의외의 인사라고 놀라는 분위기였습니다. 젊은 여성이 권력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법무장관이라는 자리에 간다는 사실 자체가 낯설었던 모양입니다. 장관직을 맡은 지 10개월 정도 지났는데, 장관직에 대한 소감이 어떠신지요?

“법무장관직은 제가 살아오면서 한 일 중 가장 격무였어요.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새벽부터 밤까지 머리에서 일을 놓아버릴 수 없어요. 특히, 한 번에 여러 가지 생각을 동시에 해야 하는 것이 가장 힘들어요. 원래 게으른 사람인데, 갑자기 나의 한계 이상을 요구하는 자리죠. 그런데, 이 자리가 저랑 딱 맞는 것도 있어요. 장관은 글을 안 쓰고 말만 하면 되잖아요? 판결문이나 변론 안 써도 되잖아요?”

― 법무장관 자리가 원래 권력관계가 복잡하고, 특히 이번 정권은 개혁이라는 과제를 안고 출범해 어려운 자리라는 것은 예측됐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평소 본인이 원하던 삶의 방향도 아닌데, 굳이 법무장관 제의를 받았을 때 응한 이유랄까, 개인적 동기는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한데요. 사회에 대한 개혁의지 때문인가요?

“원론적 이유는 법 전공자이니 법무부 장관 자리도 전문가 영역 안에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그때 상황은 주변에서 다 반대하고 대통령만 지원하는 상태여서 그만큼 힘들 수밖에 없는 자리였죠. 그런데 왜 갔느냐? 이런 것이 기사화되면 좋을지 모르겠는데, 나 자신을 던지고 싶은 심리, 어떤 극한체험의 유혹 같은 것이 있었어요.

고민이 많이 됐는데, 어떤 직관적 느낌이 등 뒤에서 가라고 떼밀었어요. 왜 이런 거 있죠? 미지의 땅을 밟을 때 원시인들이 가장 공포를 느끼는데, 그 공포에도 불구하고 등을 떼미는 유혹 때문에 발걸음을 옮겨 버리는 것, 그런 것이랑 비슷해요.

처음에는 엄두가 안 나고 자신없고, 마음 밑바닥에 있는 모든 것들이 고민과 근심으로 한꺼번에 올라왔어요. 어떻게 낙마할지 모르기 때문에 죽으러 가는 심정이었는데 어떤 직관이 가라고 등을 밀었어요. 자기를 다 던지고 가는 어떤 체험에 대한 열망 같은 것이 있지 않았나 싶은데…. 그런데 막상 와 보니, 처음에만 일기도 못 쓸 정도의 긴장의 연속이었지, 좀 지나 익숙해지니 그 이전의 나로 다시 돌아와 있어요.

다시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같은 기억과 관계 속에 있고…. 인생의 바닥부터 완전히 뭔가 새롭게 뒤집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그것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이전보다 마음이 오히려 훨씬 편해졌어요. 간혹 무모해지는 것은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도취’와 ‘도착’ 만연한 한국사회

― 법무부 장관으로서 일에 대한 자세나 고위 공작자로서 자기 관리의 비결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법부장관 자리를 저는 전문가 영역으로 생각하고 갔어요. 그런데, 그 자리는 현실적으로 민감한 정치적 자리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어요. 말하자면 권력이 집중된 자리인데, 저는 권력이 집중돼 있는 것을 역할이 집중돼 있다고 봐요.

정치권력이라는 것이 원래 대리자 역할을 하는 것이고, 그 사실에 충실할 때 정치가 투명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죠. 자리를 역할이 아니고 권력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도취이자 도착입니다.

한국의 정치상황은 그런 도취와 도착이 아직도 만연해 있죠. 어느 조직이나 사회가 위임해준 권력을 자기 권력으로 전유해 영속화하려는 속성이 있는데, 가장 적나라하게 나타나는 곳이 정치의 장이죠. 그 사실을 뒤집어보면 정치가 그만큼 사회적 소통에서 의미가 집중된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런 이유 때문에 사회 운용을 위해 가장 잘 돌아가야 하는 장이죠.

그런데, 사실은 진실이 가장 막혀 있는 곳이 정치라는 생각을 해요. 사람들의 진의가 서로 통하는 것이 진실된 상황이라면, 예술이나 학문이 거기에 좀 가깝게 가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 안에서도 그런 도취와 도착은 어느 정도 있죠. 저는 요즘 가장 지혜로운 그룹이 그냥 일상적인 국민들 같아요. 어떤 이해관계로 묶이지 않고, 집단으로 조직화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진실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아마 생활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싶은데, 이런 의견들을 체계적으로 수렴하는 작업이 정치의 선진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고위공직자로서 자기 관리 비결도 그냥 이런 원칙 하나 지키는 것이죠. 이 자리가 내 것이 아니고 남의 것, 잠시 빌려온 것이라는 말짱한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죠.”


“사법 개혁, 조급증으로는 풀 수 없다”

― 검사들에게 보낸 이메일이 한때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거기에 보면 검사들에 대한 애정이 많은 것처럼 보였는데, 장관직을 맡기 전과 후의 검찰을 보는 시각이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시각의 변화라기보다 정서의 변화가 있었죠. 검찰 조직 전체를 보는 시각은 변화가 없어요. 여전히 개혁의 과제들이 많고, 그것을 추진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데, 검사 개개인을 보는 정서는 애틋해졌어요. 검사들은 정치권력이 검찰을 왜곡시켰다는 깊은 피해의식 같은 것이 있었어요. 밖에 있을 때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왜 그런지 사정이 이해가 돼요.

제가 온 이후 수사검사들이 정치권력에 대해 제대로 수사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 이유가 뭐겠어요? 정치권력에 휘둘리면서 강력한 권력기관 역할을 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자기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려는 것 아니겠어요?”

― 야당 총재도 칭찬한 바 있지만, 대체로 직무수행 능력에서 후한 점수를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주간지에서는 참여정부 장관들의 성적표를 매기면서 장관께 A학점을 주었더군요. 검찰 개혁의 총대를 멘 사령탑으로서 개혁의 성과에 대해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습니까.

“아직 한 번도 스스로 평가한 적은 없어요. 아직 평가할 시점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죠. 개혁에 대해 한국사회는 아주 심한 조급증에 걸려 있어요. 일본만 해도 사법 개혁 하면 2~3년에 걸쳐 준비하고 그 후로 추진하는 데 적어도 5년은 잡는데, 한국은 아무 준비 없이 장관 한 명이 들어와 밀어붙이면 되는 것처럼 생각해요.

검찰 개혁은 기본적으로 몇 년이 걸리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검찰 스스로 개혁해 나갈 수 있도록 정서를 이해하고 분위기를 맞춰주면서 해 나갈 때 내실 있는 개혁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취임 석 달 지나서 ‘검찰 개혁 물 건너 갔다’ 이런 기사를 보면 한심해요. 우선 보기 좋게 강압적으로 밀어붙여 외과적으로 뭔가 하는 시늉을 개혁과 동일시하는 그런 발상 자체를 바꿔야 해요. 저는 기본적으로 개혁이 실효가 있으려면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기 때문에 그런 외과적인 것보다 내부의 변화를 중요하게 고려해요.

어쨌거나, 내년 3월까지 검찰 내에서 개혁 과제들이 결정되면 개혁이 가시적으로 속도를 더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다행히 검찰 내부에서 기대 이상으로 개혁 방향에 대한 합의가 모아지고, 문제의식도 있는 것 같아 낙관적으로 보고 있어요.”

― 개혁하면서 검찰의 저항도 만만찮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혁하면서 검찰 조직과의 관계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어떤 부분입니까?

“처음에는 나이가 젊은 여성이고 검찰 경험도 없고 해서 조직 전체가 거부하는 듯한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준사법 기관으로의 지위 회복을 목표로 한 개혁 방향에 대해서는 일단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평검사부터 검사장까지 두루 모임을 가졌는데, 의견이 잘 모아지고 있다고 봐요. 내년 상반기중에는 상당한 성과가 있을 것이고요. 그런데 처음에는 왜 그렇게 뭔가 안 풀렸을까.

저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해봤어요.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나의 등장을 상당히 오해한 것 같아요. 다시 정치권력이 검찰을 흔들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과 불신으로 관계를 시작한 것이죠. 나중에 진의가 전달되면서 점차 신뢰가 쌓여가는 느낌을 받아요.”

― 검찰이 달라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스스로 변화를 가장 실감나게 느끼는 것은 어떤 부분입니까.

“수사를 자율적으로 열심히 하니 밖에서 보기에는 달라진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수사검사는 원래 그랬어요. 그게 겉으로 나타나지 않고 수뇌부의 정치적 모습만 드러나서 그렇죠. 이런 분위기 때문에 일선 수사검사들이 정치권에 대해 피해의식과 반발심이 있었어요.

검찰이 밑에서부터 왜곡돼 있었다면 이렇게 빠른 시간에 신뢰 회복이 불가능했겠죠. 일반적으로 검사들이 애국심도 강하고 열정적이고 헌신적으로 일하는 문화가 검찰문화 속에 있어요. 문제는 조직 전체의 권력구조가 그것을 보장해줄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는 것이죠.

토론회 때 보여준 장관 인사에 대한 불신의 표현도 정치권의 개입에 대한 피해의식 때문이었죠. 과거에는 소신수사했다 좌천당한 사례가 비일비재했거든요. 수사를 열심히 하는 검사들이 성공을 못하고 상처받고 떠나거나 좌천당하는 구조였다고 할 수 있죠. 심재륜 전 고검장도 그런 사례로 볼 수 있고요. 인사권자라면 최소한 소신 있는 수사검사를 보호하는 것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 변호사 시절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에도 참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 폐지돼야 할 악법이 있다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현재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형사 시스템입니다. 특별법이 양산돼 있어 형법이 사문화되는 경향이 있죠. 기본법에 의해 대부분의 통치가 이루어져야 정상적이고 안정된 사회죠. 특별법이 많다는 것은 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니 그런 것인데, 그래도 기본법 중심으로 나갈 때 안정적인 법치가 이루어진다고 봐요. 그리고, 지금 당장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가 투명해져서 국민들의 목소리가 잘 반영되도록 정치 관련 법안들을 고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 좀 다른 얘기입니다만, 얼마 전에 ‘한겨레신문’에 부산 성인오락실 기사가 났습니다. 조직폭력배들이 불법임이 분명한데도 버젓이 영업을 해서 막대한 폭리를 취하는 것은 관련 사법기관의 묵인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서울의 경우도 부산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검찰의 정치적 독립도 중요하지만, 일선 수사기관으로서 부패에서 독립하는 도덕적 독립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사실 일반 서민들 삶에는 정치적 독립보다 이런 문제들이 더 절실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이 워낙 만연해서 그런지, 폼이 안 나는 문제여서 그런지 아무도 문제제기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개혁할 방안은 없다고 보십니까.

“나는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그런 사회구조적 부패는 검찰의 개혁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다른 그룹도 개혁돼야 해결될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검찰과 관련해서만 얘기하면, 검찰이 그런 비리에 노출되는 것도 지나치게 일차 수사기관으로서의 역할이 강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어요.

준사법기관으로 거듭나 그런 비리의 사슬에서 독립된 위치에 있어야 1차 수사기관의 비리 연루에 대해서도 소신을 갖고 수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비단 오락실 사건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비리를 근절하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권력을 분산해 상호 견제하는 장치를 정교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명분으로도 권력이 집중되면 비리의 온상이 된다고 봐요. 누가 그랬죠? 권력은 본질적으로 남용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요.”

― 장관께서는 현 국무위원 중 가장 재산이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상식적으로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 참에 간단하게 그 얘기를 좀 해 주시죠. 그리고, 평소 돈에 대해서는 어떤 철학을 갖고 계시는지요?

“재산이 없고 빚이 많은 것은 집안사정이고요. 이미 알려진 대로 남편의 사업 실패로 인한 빚이죠. 돈에 대해서는 평소에 철학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어요. 일단 돈에 깊은 관심이 없었어요.

특별히 어려웠던 적도 없었고 해서 그냥 판사 월급 받으면 그 안에서 쓰는 정도였어요. 재테크는 전혀 할 줄 모르고, 관심도 없었어요. 친한 사람과 금전거래를 하지 말라는 말은 이해는 되지만 전적으로 동의는 안 해요. 정말 친하면 돈을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돈 쓰는 재미보다 돈 버는 재미가 좋다는 것은 경험하지 못했지만, 빚이 생기고부터 빚 갚는 재미가 돈 버는 재미의 10배라는 것은 알겠더군요. 빚 없이 적당히 생활할 수 있는 상태가 사람에게 좋은 것이라고 봐요. 너무 넘쳐도… 글쎄요, 독이 될 수 있겠죠.”

― 법조인의 길을 선택한 것은 어릴 때부터의 꿈이었습니까.

“어릴 때 꿈이 없었어요. 딱히 꿈이라고 할 만한 것이…. 커서도 뭐가 돼야지 하는 꿈은 없었던 것 같아요.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살아야지 이런 것은 있었어요. 세상을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학교 가면 학교가 뭐하는 곳이지, 법원에 가면 법원은 왜 이렇게 돌아가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것도 사실 어떻게 해야지 이런 생각에서보다 그냥 체질적인 반응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고 느끼고 이런 것을 좋아하거든요. 세상이 내게 가깝게 있다는, 그런 느낌이 참 소중했어요.”

― 대통령 하겠다는 꿈보다 그냥 세상이 가깝게 있다는 느낌을 갖겠다는 것이 어찌 보면 더 어려운 것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변호사 시절에도 남다른 점이 있을 것 같은데…. 가장 인상적인 수임 사건은 어떤 것입니까.

“형사단독 판사 할 때 사기죄로 실형선고받았다는 사람이 변호사 할 때 연락했어요. 필로폰 투약으로 구속됐는데, 변론을 맡아달라고. 그래서 변론을 맡았고…. 재판받고 석방된 뒤 몇 번 전화 오다 시간이 지난 뒤에 여동생이 찾아와 죽었다고 하더군요. 한여름 밀실에서 필로폰 투약하다 죽었어요. 실연의 상처도 있고, 삶에 대해 좌절해 번민이 깊었다고 그랬어요.

그 소식을 듣고 순간적으로 그 사람이 죽음의 순간에 겪었던 번뇌 같은 것이 연상됐어요. 그 사람이 사기도 치고, 깡패짓 하면서 평생 범죄와 가까이 산 사람 인데, 그런 사람도 죽는 순간에는 어떤 순정성이 올라오는구나 하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범죄자들의 평소 행동양식은 비열하기 이를 데 없는데, 그런 사람도 마음 한구석에는 순정성이 있어서 자신이 그것을 발견해도 이미 그 때는 이런 저런 현실적 상황 때문에 돌아가지는 못하죠. 그 돌파구로 죽음을 찾아간 사람이었는데, 말하자면 부조리를 깨닫게 해준 사람이죠. 다 알면서 안 되는 상황, 그게 부조리잖아요?”

― 살면서 어떤 순간에 그런 부조리를 느끼셨는지 궁금하군요. 좀 다른 얘기입니다만, 얼마 전 신촌의 ‘섬’언니(1980년대 운동권과 문화판 사람들이 자주 찾았던 신촌의 카페 ‘섬’의 주인)가 돌아가셨습니다. 두 분이 각별히 친한 사이였고, ‘섬’을 자주 찾으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얘기 좀 해 주시죠.

“향숙이가 매우 위중하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이미 사망하고 난 다음이었어요. 상가에 가서 한참 울다 왔는데…. 향숙이는 영혼이 맑고 자존심이 곧아서 남한테 신세 안 지고 자신의 삶의 조건을 혼자 감당하려고 했던 사람이죠.

최근 몇 년은 자주 보지도 못했어요. 해마다, 12월31일날 가서 보고 그랬어요.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인생이 힘들고, 나는 빚 때문에 고생하고 서로 여유 없이 지내다 보니, 그냥 매년 마지막 날 약속한 듯 찾게 된 것이죠. 마음으로 가장 가까운 친구였는데, 그 친구는 자신이 세상을 혼자 감당하려다 외형적 삶에서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꺾였고, 나는 타고나기를 공부 잘하게 타고나서, 어떤 흐름 때문에 이 자리까지 왔고, 마음은 같은데 결과가 너무 대조적이잖아요?

허무하죠. 도대체 뭐가 진실이냐, 마음의 순정성이 지켜낸 삶이 뭐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이 복잡해져 사진 두 장 얻어 갖고 왔어요. 지금도 향숙이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요.”

“나는 ‘사랑주의자’로 살았다”

― 장관께서는 사람 사귀는 폭이라고 할까요, 그게 참 넓은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많이 사귄다는 의미가 아니고요. 사귀는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나 성향이 참 다양하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겁니다. 사람 사귀는 원칙이라고 할까, 스타일은 어떤 것입니까. 혹자는 가까운 듯 멀고, 먼 듯 가까운 사람이라고 하던데….

“일로 만나는 경우 외에는 마음으로 묶어 주는 사람하고만 친해요. 일할 때도 되도록이면 마음으로 호흡이 맞는 사람과 일하기를 희망하죠. 이성은 세상을 움직이는 데 필요하지만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정서인 것 같아요. 마음이 맑은 사람, 자기를 지켜내는 사람을 좋아하죠. 자기를 지키려는 사람은 어느 측면에선가 좌절하게 돼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욕심부릴 이유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뭔가 대단히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닌데, 나도 대단히 많이 가질 필요가 없잖아요? 요즘은 어디에 올라간다, 이런 말 자체가 낯설게 받아들여져요. 사람이 올라갈 때가 어디 있어요. 그냥 그 자리에서 내 자신을 잘 지키면서 살고, 그런 사람들 만나는 것이 행복이죠.”

―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한 시각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장관께서 생각하는 남녀 간의 사랑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저는 스스로 ‘사랑주의자’라고 생각하면서 살았어요. 사랑에 대해서는 절망감을 많이 느꼈는데, 그럴수록 사랑을 갈망했어요. 연애하고 싶다 이런 것은 아니고,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는 근원적인 질문 같은 것이었어요. 젊을 때는 남녀 간의 사랑을 통해 그런 것을 상상하게 되죠. 그런데, 사랑이라는 가치에 나머지 가치를 다 던지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였어요.

사람이라는 존재가 돈 버는 데 몰입하면 가치에는 관심이 없어지고, 운동가는 운동가대로 이념에 몰입하고, 출세하는 사람은 성취에 취하고 그런 것 같아요. 자기들이 갖고 있는 가치를 어떤 형태로든 사랑을 위해 양보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보여요. 개인이 가진 순정성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 사랑 아닌가 싶은데…. 요즘은 인간은 기본적으로 고독한 존재이고 최선의 사랑을 만났을 때도 각자의 고독을 유지해야 그 사랑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사랑이 찾아오면 그것은 축복”

― 요즘도 사랑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십니까. 좀 어려운 질문입니다만, 결혼은 다시 안 하실 것입니까.

“사랑에 대해서는 전에 오래 생각해서 언제 시간 있으면 나중에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내가 사랑에 실패한 것인가. 적당히 사랑하고, 사랑은 기본적으로 지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이루어지는 것인데. …요즘은 일 외에 생각할 틈이 없어요. 어느 신부님이 강연하시는데 그런 말씀을 하셨대요. 어제는 히스토리이고, 오늘은 축복이고, 미래는 미스터리라고요.

미래에 내가 결혼할지 안 할지는 미스터리죠. 지금 생각으로는 결혼은 별로 내키지 않아요. 간혹 사랑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는 생각했어요. 사람이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비워버리면 무엇이 남나? 고독한 공간이 남지. 그것을 채워 줄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사랑밖에 없는데, 그게 없으면 불안한 상태가 되니 인간으로 실존한다는 것은 무엇을 채워도 늘 불안하지 않을까…. 그래서, 사랑이 지나가는 것이라면 찾아오는 순간에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축복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죠.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자문해 보면 좋겠어요.”

― 사랑에 대한 생각이 종교적인 어떤 생각과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이 사람 사이에 뭐가 통하는 것이라는 말씀인지 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남녀 간의 사랑과 다른 사랑이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보지 않아요. 사랑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벗어나 개인이 가진 고유하고 고독한 영혼들이 부딪치는 것이라고 봐요. 사랑하면 가장 좋은 것이 영혼이 드러나는 느낌을 갖잖아요? 이것은, 사회적 지위와 학벌, 남녀 이런 조건들이랑 관계 없는 것이죠. 그냥 진심이 받아들여지는 상태가 아닌가 싶어요.”

― 장관께서는 예술 작품 속의 인물이나 역사 속의 인물을 마치 연애하듯 상상하는 데 대가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들은 계보는 르 클레지오·기형도·김기덕까지입니다. 그 다음이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문무왕이 궁금했어요. 대왕암에 여행갔다 죽어 바다에 묻히고 싶다는 남자가 도대체 어떤 인물인지 만나고 싶었지만, 시간이 우리를 갈라놓았잖아요? 지난해에는 ‘불안의 개념’을 읽다 키에르케고르에게 반했는데 요즘은 예수님 생애에 관심이 많아요. 얼마 전에 모스크바에 갔을 때 갤러리에서 컴컴한 곳에 엎드려 기도하는 남자 그림을 봤는데, 누구냐고 물어보니 예수님이라고 그러더군요.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그리고 이것은 말해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는데, 얼마 전에 머리가 복잡해서 뚱딴지 명탐정 만화책 빌려 읽고 있는데, 만화의 수준이 우리 어릴 때하고는 차원이 다르더군요.”

―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사 중 하나가 정치 할 의사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열린우리 당에서 열심히 ‘러브 콜’을 보낸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정치 하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한 마디로 없어요. 몇 번이나 의사를 밝혔는데 자꾸 이런 질문을 받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기자들에게 물어보니, 좀 이름이 난다 싶으면 다들 정치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어서 그런다고들 하대요. 한국 사회가 어떤 조급증이 있지 않나 싶어요. 사회 각계의 층이 얇아 자체적인 볼륨이 없으니 권력이 몰린 곳으로 다들 쏠리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 같은데, 저는 개인적으로 정치도 정치적 역량을 쌓으면서 전문가 정치를 해야 한다고 봐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저는 그만 나가고 싶어요. 장관까지 갔는데 그만 나가고 싶어요. 한참 뒤로 후진하고 싶어요. 살고 싶은 방향과 정치는 잘 안 맞아요.”

“내 삶의 방향과 정치는 다르다”

― 대중적인 인기가 급부상해서 그런 얘기들이 많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여성의 진출이 두드러진 사회 분위기가 여성 정치인이나 지도자에 대한 요구로 이어지는 것도 한몫 하는 것 같습니다. 여성 정치지도자상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지요? 또 혹시 주변에서 대권 이야기 나오면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요?

“여성들의 사회 진출은 시대의 대세이니 당연히 앞으로 여성 정치인들이 많이 나와야겠죠. 정치인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에서 여성들의 자리가 마련돼야 하겠지요. 여성 정치인은 많이 나올수록 좋다고 봐요. 지금 제가 법무부 장관 하는 것이 사회적 화제가 되는 것은 변화의 과도기여서 희소성 때문에 그런 것이고, 앞으로는 여성 법무부 장관도 평범한 일상이 돼야겠지요.

그런데, 노랫말에도 나오듯 사랑은 아무나 할 수 있고, 장관도 노력하면 업무를 잘 해나갈 수 있는 자리이지만, 대통령은 아무나 하는 자리는 아니라고 봐요. 제가 확신하는 것은 저는 아니라는 것이지요. 신기한 것은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 그런 상상의 비약이 가능한가 하는 점이에요.

사회가 풍요로워지려면 상상력이 다양해야 하는데 그렇게 과민하게 정치적으로만 상상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한국사회는 상상력 자체가 정치밖에 없는 나라처럼 보여요. 사람들이 법무부 장관 오니 정계로 갈 생각을 하고 온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데, 전혀 아니에요.

아까도 말했듯 나는 장관 할 때 나를 툭 던지는 심정으로 했기 때문에, 전혀 그런 세상의 말들이 내 마음의 반응을 일으키지 않아요. 지금 별 반응이 없는데 앞으로라고 달라지겠어요? 나이도 들었는데 내 살고 싶은 대로 살아봐야 하지 않겠어요?”

― 장관께서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된 비결 중에는 파격적인 행동양식도 한몫 한 것 같습니다. 대체로 엄격한 관습이 적용되는 곳에서 파격은 마이너스로 작용할 공산이 큰데, 장관의 경우는 결과적으로 플러스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어떤 기자들은 그것이 고도로 계산된 정치적 행동이라고 말하기도 하던데요?

“제가 들은 말 중 한편으로 가장 희망적이고 즐거운 말이 그 말이었어요. 저는 체질적으로 어떤 사안이든 고도의 계산을 못 하는 지진아 기질이 있어서, 오히려 그 말이 위안이 됐어요. 그냥, 제 생각에는 과도기에 젊은 여자가 장관을 하니 그 덕을 본 것이라고 생각해요. 좀 관대하게 봐주려는 그런 기운이 있었던 것 같거든요.

제가 일부러 파격을 구사한 것은 전혀 아니고요, 아주 평범하지 않은 동네에서 평범한 행동을 하니 그것이 파격이 된 것 같아요. 첫날 귀걸이 한 것 사람들 눈에 이상하게 보일지 몰랐어요. 저로서는 정성 들여 귀걸이를 했거든요.

검사장회의 할 때 현악 4중주 들었는데,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인데, 신문에 난 것을 보고 놀랐어요. 검사와의 대화 때 대통령 앞에서 다리 꼰 것도 이상하다고 그러는데, 여자들이 치마 입고 취할 수 있는 자세가 그것밖에 없지 않나요? 경험이 있었다면 바지를 입고 갔겠죠.

파격적인 행동양식이 인기의 비결?


국회 출석 때 웃은 것은 그 광경이 우스워 저도 모르게 실소한 것이고, 국회 답변 때 ‘이런 얘기 들었느냐’고 물어봐서 ‘지금 들었다’고 대답한 것도 그냥 솔직하게 답한 것인데 이상하게 보인 것 같았어요. 법무장관이 세상 얘기 미리 다 들어야 하는 자리는 아니잖아요?

그리고 옷소매 긴 것 입으면 그것도 왜 그런지 의미부여하려고 해요. 아무 의미 없어요. 체구가 작고 옷이 커서 그렇죠. 마음에 드는데 딱 맞는 사이즈가 없으면 그 중 가장 맞는 사이즈 택해서 옷을 사잖아요? 그러면 소매가 좀 길 수 있지 않나요? 정치권 안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너무 평범한 행동을 하니까 그게 튀어 보이는가 봐요.”

― 지금 말씀하신 오해들이 다 주목받는 자리에 있어서 그런 것 아닌가 싶습니다. 과거에도 살아온 삶이 주목받는 자리의 연속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경기여고 수석, 서울대법대 입학, 사법고시 패스, 여성 로펌 대표, 법무장관… 이런 과정이 화려한 만큼 피곤할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살면서 다른 인생에 대한 가능성을 생각해본 적은 없으신지요?”

― 두 번 정도 진지하게 인생을 바꿔볼까 생각해 봤어요. 언제 어떤 방식인지는 말하기 그렇고요. 판사 할 때 다시 무용과 갈까, 불교철학과 갈까 하고 한때 고민했던 적이 있어요. 그런 고민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생각하고 느끼고 조용히 살 수 있는 삶을 막연히 꿈꾸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앞은 언제나 캄캄해서 안 보이고, 늘 방황으로 끝났죠.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 와서 이런저런 일을 겪다 보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런 것이 오히려 선명하게 다가와요. 뭔가 구체적인 감이 잡히고, 미래도 비교적 선명하게 상상이 돼요.”

― 그러면 장관 그만두고 어떤 일을 하실 계획인지요?

“장관 그만두면 일단 좀 휴식을 취하고 싶어요. 그리고 자유롭게 개인생활하면서 살고 싶어요. 빚을 갚아야 하니 열심히 벌어 갚아야 할 것이고…. 그것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소소한 개인생활하면서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소소한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요.

출퇴근하는 직업 안 하고 집에서 놀면서 글쓰기할 생각도 좀 있고, 여기에 와서 장관 일 하면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선명해졌어요. 지금까지는 끌어오면서 살았는데, 앞으로는 그렇게 안 살려고…. 직업은 정말 갖고 싶지 않아요. 원래 제가 건달 끼가 좀 있어요.

저혈압이라서 늦잠 자고 운동 조금만 하고 많이 안 먹고 이래야 하는데, 지금은 그 반대로 새벽부터 움직이고 많이 먹고 운동은 여전히 안 하고 그러잖아요? 솔직히 말하면 사회생활을 안 하고 싶어요. 너무 안 하면 안 되니 봉사활동을 좀 하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살고 싶어하지 않나요?”

“건달 끼 있어 장관 끝내고는 놀고 싶다”

나는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살고 싶은 꿈은 꾸지만 아마도 대부분은 실천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가 법무장관직을 그만둘 때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내일은 미스터리이기 때문이다.

강장관의 파격을 고도로 계산된 정치적 행보로 보는 사람들의 예측대로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고 해도 지금 이 말들이 미리 계산된 정치적 행보는 아닐 것 같았다. 사람은 바뀐다. 강장관도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도, 그냥 정치 안 한다고 명확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현재 그가 그렇고 앞으로도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는 어떤 확신 때문 아닐까.

현재 그가 관심 있는 것은 총선이 아니라 건강관리, 검찰 개혁, 춤, 연말에 열리는 전인권과 한영애의 콘서트 같은 것이다. 그리고 법무장관을 그만두게 되면 여행부터 실컷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나이 마흔이 될 때까지 그 흔한 해외여행을 한 번도 안 했던 사람이다. 내가 들은 것은, 몇 년 전에 네팔에 다녀온 것이 첫 해외 나들이였다. 왜 하필 첫 여행지가 히말라야였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다 보면 뭔가 비우기 위해 채워 넣는 사람 같았다. 말하자면,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길을 찾는 것…. 그는 그런 태도를 종교적이라고 표현했다. 그렇게 보면 사위를 더할수록 마음이 비워진다는 승무는 그의 삶을 압축하는 퍼포먼스처럼 보인다. 그는 앞으로 어느 길 위에서 춤을 출까.  
  
출판호수 2004년 01월호 | 입력날짜 2003.12.18


[입체분석|‘인기폭발’ 강금실] (신동아)


강금실 장관이 山中 찻집에서 털어놓은 인간적 고백
“사랑… 기회가 온다면 마다하지 않겠다”

●판사 안 됐으면 춤꾼 됐을 것
●노 대통령이 나보다 더 강한 원칙주의자
●‘강효리’ 별명 개의치 않아
●장관직 수행의 최대 걸림돌은 잠과 식사
●검찰 개혁 마무리될 때까지 장관 하고 싶다
●참여정부 인기 없는 이유는 일 못했기 때문
●측근비리 특검 도입과정 지켜보며 혐오감 느껴
●측근비리 특검, 상대방 약점 잡아 세 과시하는 것
●검찰총장의 인사 협의 명문화 요구는 부적절
●선거법 개정해 노동자 정치파업화 해결해야
●상대에게 고통 준다면 사랑이 아니다
●돈 열심히 벌어 50대엔 자유롭게 살 터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중에 ‘사랑의 목마름’이란 게 있다. 오래 전에 읽은 터라 자세한 줄거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제목이 시사하는 대로 한 여자의 사랑에 대한 갈망이 애잔하게 흐르는 작품이다. 강금실(46) 법무부장관과 인터뷰하고 난 다음 문득 그 소설이 생각났다.

스산한 날씨였다. 바람이 가볍게 일었고 햇볕은 인색했다. 싸늘하지만 부드러운 12월의 공기가 목젖을 건드렸다. 강 장관은 인터뷰 장소인 환기미술관에 약속시간 5분 전에 도착했다. 청와대 뒤편 북악스카이웨이 근방에 있는 이 미술관은 우아하면서도 화려하지 않아서 좋았다. 마른 대지에 물을 뿌려놓은 듯 차분하게 가라앉은 분위기. 오직 새소리만이 태엽처럼 한낮의 적막을 감고 있다.

강 장관은 지난해 가을 이곳을 처음 알게 된 후 혼자 가끔 들른다고 했다. 무엇에 이끌렸냐고 묻자 “그림보다 미술관이 좋아서”라고 말했다. 말 맺음새가 간결하고 깔끔하다. 상대에게 틈을 허용하고 싶지 않아 하는 듯한. 단아한 기품이 배어 있는 얼굴이다. 마른 탓인지 인상은 생각보다 딱딱하고 날카롭다. 절제되고 응축된 힘이 느껴진다.

경내 찻집에서 작품집과 스카프를 둘러본 강 장관은 “건물이 참 좋더라구요” 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정장에 걸친 망토가 그녀의 작은 체구를 부지런히 감쌌다. 3층짜리인 전시관 건물은 고풍스러운 계단과 포근한 느낌을 주는 곡선미가 일품이다. 맞은편 고목에 까치집이 보였고 그 너머로 북악산 자락이 눈에 들어왔다. 강 장관이 감탄조로 말했다. “저기 새집 좀 봐요. 어떻게 저런 데 집을 짓고 살까.” 시골에서 자란 기자는 거기에 대해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었으므로 가슴이 뜨끔했다. 그래서 엉뚱하게도 “시골에서 산 적이 없냐”고 물었고 강 장관은 “서울에서 죽 자랐다”고 답했다.

강 장관도 그렇고 기자도 그렇고 이날 인터뷰는 조금 색다르게 진행하고 싶었다. 공식적이고 딱딱한 얘기보다는 정서나 가치관, 사생활 등 인간적 측면을 엿볼 수 있는 사적인 대화 말이다. 애초 강 장관에게 이메일을 보내 인터뷰를 요청할 때도 그런 취지를 밝혔고 강 장관 또한 그에 호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검찰 개혁 문제나 현안인 특검 얘기를 안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러기엔 지난 10개월 동안 강 장관이 이룬 성과가 만만찮다. 게다가 강 장관과 정치권, 검찰의 관계는 또 얼마나 관심을 끌었던가. 그런 까닭에 인터뷰 약속이 이뤄진 후 강 장관에게 보낸 질의서에는 정작 이런 분야에 대한 질문이 잔뜩 적혀 있었다.

전시관을 둘러본 후 찻집에 다시 마주앉았다. 다른 손님은 없었다. 인터뷰 배석자도 없었다. 강 장관이 차를 샀다. 소리가 조금 낮으면 더 좋을 듯싶은 여가수의 재즈풍 노래가 나른한 주말 오후를 붙들고 있었다. 이때만 해도 이날 인터뷰가 예정된 세 시간을 넘겨 서초동 약속장소로 향하는 강 장관의 차 안에서까지 진행될 줄은 두 사람 다 전혀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은 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비공식적인 인터뷰로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질의서를 받아보고 놀랐어요.” 강 장관이 실망감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음악에, 풍경 좋고, 무슨 검찰 얘기를 하겠어요, 이런 데서. 검찰의 ‘검’자만 들어도 지겨워.”

“검찰 ‘검’자만 들어도 지겨워”

화랑에 왔으니 그림 얘기부터 해야겠다. 법무부는 최근 강 장관의 아이디어로 과천 청사 1동 2, 3, 4층 복도에 그림 85점을 전시했다. 유치원생, 소년원생, 교정시설 수용자들의 그림이 대부분인데 기증받은 기성 작가의 그림도 15점 포함돼 있다. 전시 제목은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함민복 시인의 시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제가 좋아하는 시예요. 개혁 개혁 하는데 시스템을 바꾸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문화적인 접근이에요. 일하는 것이 즐겁도록 공간환경을 꾸며주고 창의력을 계발할 수 있는 정서적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거죠. 또 하나 있어요. 교정시설에 있는 사람들한테 음악을 들려주는 거예요. 반경환 시인이라고, 클래식 음악에 일가견이 있어 책도 낸 분이죠. 옛날에 실형을 산 적도 있고. 그분이 한 달 동안 아침저녁으로 들을 수 있는 클래식 음악 곡목을 짜주셨어요. 이것을 곧 교정시설에서 활용하도록 하려구요. 딱딱한 교육도 필요하지만 정서적 접근을 통한 교화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아직은 많이 미흡하죠. 시간도 너무 없었구요. 너무 일할 시간이 없어요. 지치고. 법무부 안에서 법무부 일만 하면 좋겠는데.”

-춤과 음악에 일가견이 있으시죠.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을 꼽으라면 춤이고 그 다음이 노래예요.”

-노래, 직접 하는 것도 좋아하십니까.

“좋아하죠. 잘은 못하지만.”

-애창곡은요?

“많죠. ‘고향의 노래’도 좋아하고. 가요는 김광석 것 좋아하고. 최근 CD 전집 사서 듣는데, 계속 들어도 편안한 특징이 있더라고요.”


“나중에 북 다시 배워야죠”

2003년 11월29일 강 장관은 과천 청사에서 전국 일선 지검장들과 워크숍을 가졌다. 이날 회의가 끝나고 국무위원 식당에서 점심 먹는 자리에서 강 장관이 초청한 실내악단이 현악4중주를 연주한 것이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반응이 좋았어요. 오신 분들도 좋아하고. 회의하면서 문화행사 하는 건 보편적인 거라 보거든요. 그런데 법무부나 검찰에서 그런 예가 없었는지 국무위원 식당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얘기하더라구요. 저는 참 좋던데요.”

-검사장들이 머쓱해하지 않던가요.

“좋아하시던데요.”

-익숙지 않을 텐데요.

“좋아했어요. 모르죠, 속으론 어땠는지.(웃음)”

-장관님을 보면, 몸 속에 끼가 흐르는 것 같아요. 예술적 끼.

“누구나 다 있잖아요.”

-정열적인 끼가 느껴집니다. 내림인가요.

“예술적 재능이 유전되긴 했어요. 아버지가 음악 선생이었거든요. 바이올린 하셨어요. 손재주가 뛰어났지요. 자식들이 음악적 소질은 있는 것 같아요.”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습니까.

“북 두드리는 걸 좋아하는데, 하도 배우다 말고 배우다 말고 해서. 대학 2학년 때 탈춤반에서 활동했는데, 법대 왔으니까 이런 건 그만둬야 한다, 뭐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그만두고. 그런 식으로 20년, 30년 가버린 거죠. 전 타악기를 좋아해요. 장고도 배우다 말았는데. 북은 나중에 다시 배워야죠.”

-춤은 인간문화재한테 배우셨죠?

“계속 배우지 못해 아쉽죠. 85년에 처음 배웠는데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에 배우다 말고. 그 후에 또 한 차례 배우다 말고.”

-춤을 추면 기분이 어떻습니까.

“정신이 산만하면 춤을 못 춰요. 머리를 비워야 춤을 출 수 있어요. 너무 피곤하거나 신경 쓸 일이 많고 잡념이 있으면 못 춰요. 손발은 움직이지만 몸이 무겁죠. 오래 추다 보면 호흡이 저절로 배 밑으로 가라앉거든요. 명상 호흡법과 원리가 같죠. 명상 수준에 이르러야 제대로 몰입해 출 수 있어요.”

판사 시절 춤을 배우다 만 게 못내 아쉬웠던 강 장관은 변호사 개업 후 제대로 배우겠다는 의욕에 경기도 도살풀이 인간문화재인 김숙자 선생의 딸한테 1년 가까이 춤을 배웠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잘 늘지 않았다.

“96년인가 97년에 배웠는데, 영 안 되더라구요. 정신이 산만하니까. 변호사 개업한 다음 계속 돈 문제, 사건에 신경을 쓰다 보니 명상 수준에 이르지 못한 거예요. 처음엔 그냥 배우고 싶어 배웠는데 추다 보니 명상 효과가 있다는 걸 느꼈어요. 내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 같아요, 춤 배운 게. 사람들한테 권하고 싶죠. 차분해지죠, 이런 공간처럼.”

-현대 댄스와는 많이 다르죠?

“요즘 유행하는 검도나 단전호흡, 요가와 원리가 같다고 봐요.”

“기형도 시 좋아해요”

-첫 직업이 판사인데, 판사가 안 됐다면 어떤 일을 하셨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대로 했다면 춤을 본격적으로 배우거나 그 주변을 왔다갔다했겠죠. 무용평론을 했던지. 불교에도 관심이 많았죠. 대학교 1, 2학년 때는 불교와 신학에 관심이 많아 그쪽 책을 많이 봤죠. 그 후 사느라고 바빠 불경도 안 보고 절도 안 가게 됐지만. 지금 생각하면 30, 40대가 가장 세파에 시달리는 나이가 아닌가 싶어요. 그러다 50이 지나 늙으면 옛날로 돌아가 명상도 하고, 그런 것 아니겠어요.”

-저도 시집을 제대로 읽은 지 한 10년 되지 않았나 싶은데요.

“난 또 시집을 냈다고 그러는 줄 알았네.(웃음) 국문과 나오면 다들 시집 안 내나.”

-아닙니다. 국문과 나왔다고 다 시집 내나요. 법대 나왔다고 다 사시 되는 것 아니듯.

“어떤 시, 누구 시 좋아해요? 나는 기형도 시 좋아해요. 특별한 느낌이 있는 시예요.”

-저는 예전엔 김수영을 좋아했고….

“저도 좋아해요. 대단한 시인이지요.”

강 장관은 문학 얘기를 더 하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갈 길이 먼’ 기자는 화제를 바꾸었다. 내심 나중에 틈 봐 다시 얘기해야지 하고는. 하지만 문학 얘기를 더 할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고, 기자는 후회했다. 특검 얘기를 덜 하더라도 문학 얘기를 더 하며 강 장관의 정서를 더 깊이 들여다봤어야 했다.

-법대는 어떻게 가게 됐습니까.

“고등학교 때까지 잘 모르잖아요. 자신이 어떤 사람인 줄.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 사람인 줄을. 10대는 자기 확인을 잘 못하는 나이 아닌가요. 인생에 대해 종교에 대해 관념적인 번민은 많았지만 구체적인 직업 선택에 대한 계획은 없었던 것 같아요. 뭐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대학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데생도 배우러 다니고, 사진도 찍고, 연애도 하고.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확인이 안 됐던 것 같아요. 미학 강의도 듣고, 종교학 강의도 듣고. 그때만 해도 서울대 법대에 여학생이 세 명 들어갈 때였으니까. 객관적으로 성적이 너무 좋았거든요. 집에서 기대가 너무 크고 법대 가라고 주문하니까. 판사 하라고.”

-성적이 좋은 게 문제였다?(웃음)

“공부를 너무 잘한 게 문제였죠. 그렇다고 머리가 좋은 것도 아닌데. 하여튼 1등을 너무 많이 한 거예요.(웃음) 그래서 법대에 들어간 거예요. 사실 갈등이 있었어요. 다른 것을 할까 말까. 10년쯤 지나니 갈등이 없어지더라구요. 예술도 현실 속에서 할 수밖에 없잖아요. 생활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거고. 우리 삶이라는 게 직업을 통해 생계도 해결하고, 전문성도 갖추고, 신분도 보장받고, 사회에도 기여하고, 그런 구도잖아요.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죠. 누구나 현실과 접점을 이루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법대 가서 법률전문가의 길을 걸어온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죠.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죠. 다른 직업을 딱히 잘했을 것 같지도 않고.”


-전문성을 가진 직업이 부럽더라고요, 살다 보니.

“깔끔한 면이 있어요. 조 기자께선 아직 나이가 젊은데요. 이제 뭘 새롭게 시작해도 전혀 늦지 않은 나이인데.”

강 장관도 음악소리가 크다고 느낀 모양이다. 종업원에게 부탁해 음악소리를 조금 낮췄다. 법치주의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우리 사회에는 실질적 법치주의가 정착이 안 돼 있죠. 게임의 법칙이 없고. 룰을 지키면서 전술전략을 써야 하는데 룰을 안 지키거든요. 제가 해야 될 일이나 참여정부의 역할도 법치주의의 정착이죠. 대통령 말씀이 잘 전달이 안 돼요. 공동체나 집단의 리더그룹, 특히 오피니언 리더들이 법에 의한 룰의 정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죠. 이해관계나 역학관계에 의해서만 사물을 보니까. 법률가이시기도 한 대통령께서는 뭐든지 룰에 의해 얘기하는데, 사람들에게 이게 안 먹히죠. 무슨 엉뚱한 소리 하냐고.

특검도 마찬가지예요. 어저께도 아는 변호사님이 저한테 권한쟁의심판 청구하지 않는 건 직무유기라고 야단 치셨는데, 어떤 측면이 있냐 하면 검찰이 잘하든 못하든 한 나라엔 일반적인 수사 시스템이 있다는 거죠. 지금 수사를 하고 있어요. 근데 국회가 나서서 중단시켜 (수사권을) 가져간 거예요, 이번 특검이란 것이. (수사가) 끝났는데 이러이러한 점이 문제니 특별 기구를 만들어 대책을 세우자는 게 아니라 일반적인 수사 시스템을 중단시키고 특별 시스템으로 넘기는 거잖아요. 이건 국가 시스템을 흔드는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께서 법무부 건의를 받아 ‘수사중인 사건이니 다시 한번 검토해달라’고 국회에 재의를 요구하는 것은 합법적인 절차예요. 그런데 이게 정치적 역학관계로만 해석되잖아요.”

강 장관에 따르면 노무현 대통령이 강 장관보다 더 강한 원칙주의자다.

“저는 어떤 문제를 풀 때 꼭 원칙만 고집하지 않고 여론이나 역학관계를 감안하는 좀 온건한 입장이거든요. 성격 자체가 그래요. 그런데 대통령은 안 그러시거든요. ‘죽어도 나는 원칙을 지키겠다’고 하시거든요.(웃음) 저보고 ‘법무부가 훨씬 정치적’이라고 뭐라 그러신 적도 몇 번 있었죠. 그럴 땐 저도 혼란스러워요. 원칙만 갖고는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인간관계를 감안하면서 균형점을 찾아야죠. 법치주의이면서도 인간적인 따뜻함과 정서가 살아 있는. 막스 베버가 정치 발전 단계에 대해 인치에서 법치로, 법치에서 다시 예술로서의 정치로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는데, 제가 원하는 것도 한 단계 진전된 상태죠. 법만 요구하는 것도 답답한 노릇이죠.”

노대통령의 고집

-어차피 수사가 끝난 다음 특검을 할 바에야 아예 처음부터 특검을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차라리 그랬다면 좋았죠. 이런 식으로 수사 도중에 특검 할 바엔. 그런데 정치권에서 진정으로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최도술 사건이 터질 때부터 그런 얘기를 했어야죠. 하지만 한나라당 (대선자금에 대한) 수사 이후잖아요. 한 달 가량 간격이 있어요. 최도술 건이 터진 게 10월 초고 특검 얘기가 나온 게 10월 말이거든요.”

강 장관은 특검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자신은 애초부터 특검 반대론자라고 했다.

“일반적 수사 시스템을 정상화하는 데 주력해야지 문제가 있다고 자꾸 특별검사제를 도입하면 부작용이 생기죠. 설렁탕 집에서 ‘특’을 주로 팔면 보통 설렁탕은 없어져버리잖아요. ‘특’이 일반화되고 또 다른 ‘특’이 나오겠죠. 검찰이 수사를 잘못한다면 바로잡아주는 쪽으로 접근해야지, 이거 안 되겠다, 빼버려야겠다고 하면 곤란하죠. 그러려면 차라리 검찰 없애버리지, 특별검사가 다 하게. 그럴 순 없거든요, 국가기관이라는 건.”

-시민단체 등에서는 오래 전부터 특검제 도입을 요구해오지 않았습니까.

“나무가 제대로 못 자란다면 약을 뿌리고 고쳐줘야 튼튼해지죠. 다만 시간이 좀 걸려요. 50년 동안 쌓인 검찰 조직의 문제가 3개월 만에 해결되겠냐구요. 5년 이상 천천히 가야죠. 그런데 한국 사회는 그걸 못 참아요. 나무가 시들시들하면 당장 뽑고 새 걸 심으려 해요. 고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인내가 없어요. 법무부장관으로 온 이후 생각이 바뀐 게 아니라 원래 제 생각이 그래요. 형사법 시스템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어요. 특가법이란 게 특별법이잖아요. 국가보안법도 그렇고. 이와 관련된 형법이 사문화되다시피 했지요. 가치가 인플레된 사회예요. 차분하게 원형을 찾기가 어려운 지경에 처해 있죠. 저는 그런 점에서 보수적인지도 모르겠어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대통령 측근비리에 대해 특검 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우세하죠.

“국민 여론이 그렇다면 해야죠.”

강 장관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검찰이 독립적으로 수사할 여건이 갖춰졌다고 보십니까.

“그것보다는 원칙에 반한다는 생각에서 (특검에) 반대하는 겁니다. 정말 목숨 걸고 수사하고 있는데 ‘너 안 되겠다’며 도로 빼앗는 꼴이잖아요. 아직 결과도 안 나왔는데. 수사검사들이 느낄 낭패감을 생각해봐요. 일반 국민의 시각과 전문가 시각엔 갭이 있어요. 검사들은 수사에 대한 전문성을 갖고 있어요. 수사에 대한 철학이랄까 방법론이랄까. 저는 여기 와서 그걸 이해했거든요. 여론이 일일이 전문가 영역에 개입하는 건 문제가 있어요.”


‘특’만 팔면 ‘보통’은 사라져

-모양은 더 안 좋아진 것 같아요. 거부권이 행사되고 재의결되는 바람에.

“특별히 더 나쁠 게 뭐 있겠어요.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강 장관이 냉소적으로 말했다.

“결국 검찰과 특검을 경쟁시키자는 것 아니에요? 이제 대선자금 수사와 측근비리 특검 수사가 같이가게 생겼잖아요. 어떻게 할 거냐구요. 수사로 도배질하게 생겼는데. 세계적으로 이렇게 특검 하는 나라는 없어요. 특검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건 옳지 않죠.”

강 장관은 기자가 검찰이 최근 일부 인사를 대선자금과 관련 없는 개인비리로 구속한 것을 거론하자 “특검 얘기 그만하죠” 하며 말을 잘랐다. 표정이 좋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혐오감을 느껴요. 외형상 특검법 발의는 합당하고 타당해요. 법률적 구성요소도 갖추고 있고. 검찰 인사권자의 주변 사람들 문제니까 다른 데서 수사하자, 좋아요. 그런데 이것을 도입하는 과정에 대해 혐오감을 느낀다구요. 그런 순수한 의도에서 특검을 하자는 게 아니잖아요. 얘기하다 보니 기분 나빠지네요. 상대방 약점을 잡아 자기 힘 과시하는 것과 뭐가 달라요.”

“도대체 뭐가 정의냐구요?”

강 장관은 특검을 추진한 정치권을 강한 톤으로 비난했다. “기사엔 넣지 말라”며 거친 표현도 사용했다.

“도대체 뭐가 정의냐구요. 절차상 충분히 얘기할 수 있는 것이라면 동기와 의도는 아무래도 괜찮다는 건가요. 동기와 의도가 명백한데. 총선 때까지 특검을 끌고 가 시끄럽게 만들고 망신 주겠다는 건데. 도대체 측근비리가 있는 대통령이 나쁜 거예요, 그것을 이용하는 한나라당이 더 나쁜 거예요. 어떻게 생각해요.”

강 장관은 측근비리라는 용어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측근비리라는 것은 대통령 재임중 측근들이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이익을 챙기는 행위를 말해요. 그런데 지금 문제가 되는 건 대선 때 일이에요. 측근비리라는 말 자체가 안 맞는 거죠. 우리 사회엔 이런 식의 용어 인플레가 많아요.”

“특검 얘기 너무 오래했죠” 하고 강 장관이 제지하지 않았다면 특검 관련 질문을 더 던질 뻔했다. 기분 전환도 할 겸 ‘부드러운’ 얘기로 넘어갔다.

-대중적 인기가 대단합니다. 일거수 일투족이 언론에 보도되는 걸 보면.

“자꾸 드러나는 게 뭐가 좋겠어요.”

-한편으로 생각하면 기분 나쁠 것도 없을 것 같은데요. 공직자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건 긍정적 측면이 있죠.

“나쁠 건 없지만 특별히 좋을 것도 없어요. 나하고 관련짓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효리요?

“인기를요. 어느 정도인지 실감도 잘 못하겠구요. 신문에 매일같이 사진이 나더군요. 공직자의 업무수행에 대한 국민의 평가라고 받아들이고 싶어요. 인기가 있으니 별명도 붙었겠죠.”

-화내셨다면서요?

“그건 공보관이 잘못 전달한 거예요. 강효리라고 해서 화낸 게 아니고 공식 업무수행을 다룬 기사에서 제목을 강효리라고 붙인 건 곤란하지 않느냐는 뜻이었죠. 그런 경우 외에는 맘대로 불러도 상관없어요.”

-드라마 ‘대장금’에 빗대 강장금이라고도 하지요.

“상관없어요.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면 되죠. 그 드라마, 초기에 한두 번 봤는데 눈에 띄게 재미있더라.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추리적인 요소가 있어요. 그래서 재미있는 거예요.”

-강 장관의 높은 대중적 인기를 두고 여성적 리더십이 한국 사회에 먹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있더군요. 장관께서 생각하는 여성적 리더십엔 어떤 특징이 있나요.

“한국 사회가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본의 아니게 제가 그 변화의 한 축에 서 있는 거죠. 그런 거지, 그것이 저와 바로 일치된다는 느낌은 못 받고 있어요. 젊은 여성이 법무부장관에 취임했다는 게 일종의 사건이었던 데다 변화에 대한 요구, 특히 검찰개혁에 대한 요구가 강했잖아요. 그것이 상승작용을 일으킨 게 아닌가 싶죠.”

-여성성이라는 걸 의식하는 편인가요?

“그냥 편한 대로 살아요. 좋아하는 대로. 더 좀 그러고 싶은데, 사실은. 직업이 하도 얌전하게 지내야 하는 직업이라 맘놓고 못 그러죠.”

-국회에서 화장하는 것까지 화제가 됐었지요.

“점심 먹고 와서 잠깐 카메라가 안 보이기에 얼른 콤팩트를 했는데 찍혔더라구요. 아직 카메라를 의식하지 못해요. 그래서 실수를 많이 하는 거죠. 기도하는 듯한 모습도 찍히고. 맘놓고 킥킥거리다가 녹음 당하고. 좀 둔해요.”

-대중적 인기라는 게 공인들한테는 긍정적 부정적 양 측면이 있을 텐데, 관심이나 기대나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크지 않겠습니까. 부담스럽지 않으세요.

“의식하지 않아요.”

-시민들한테 편지도 옵니까.

“그건 모르겠고. 오다가다 잘해주죠. 물건값도 깎아주고. 선물도 주고. 백 사면 지갑도 주고.(웃음) 고맙죠. 미장원에서 머리도 잘라주고 화장도 고쳐주고. 잘해줘서 고마워요.”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daum) 카페에는 강 장관 팬클럽 모임이 8개나 있다. 그중 ‘강금실 법무장관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경우 회원 수가 5000명을 넘는다.


-인터넷 팬클럽 사이트에 들어가본 적 있습니까.

“어쩌다 한번요. 집에 인터넷이 깔려 있지 않아 자주 볼 수는 없고.”

-‘강금실 장관 5년 재임을 위한 모임’도 있는데요. 미국 클린턴 행정부 때 여성 법무장관인 재닛 리노는 8년간 하지 않았습니까.

“사람 뜻대로 되겠어요?”

강 장관은 “법무장관이라는 자리가 이토록 많은 일을 하는 자리인 줄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여기서 잠깐 강 장관이 지난 10개월간 추진한 개혁 관련 업무를 살펴보자.

먼저 검찰 인사위원회 운영 개선. 자문기구에 불과하던 위원회를 심의기구로 격상해 실질적인 권한을 갖도록 했다. 또 검사장급 이상에만 해당되던 위원 자격을 평검사에게도 부여하고 외부인사를 2인 이상 참여토록 해 검찰 인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갖추게 했다.

다음으로 철저한 상명하복으로 검사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일었던 검사동일체 원칙을 폐지했다.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해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는 규정을 ‘상급자의 지휘·감독을 받는다’로 개정했다. 또 위법하거나 부당한 지시에 대한 이의제기권을 신설했다.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준법서약서도 과감히 폐지했다. 아울러 인권보장기관으로서의 위상 확립을 위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제도를 개선하고 국선 변호 대상을 확대하는 한편 변호인의 피의자 신문 참여제도를 도입했다.

수사권 남용을 방지하는 방안도 마련됐다. 검사적격심사제를 도입해 검사 임관 후 일정 주기마다 직무수행능력을 심사토록 했다. 말하자면 검사 재임용 심사인 셈이다. 또한 ‘제 식구 감싸기’ 시비에 휘말려온 감찰제도를 강화할 방침이다. 법무부 감사관실을 장관 직속 감찰실로 격상시키고 장관 자문기구로 감사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대검 감찰부가 1차 감찰기구라면 법무부 감찰실은 2차 감찰기구가 되는 셈이다.

검사 직급 폐지와 단일호봉제 도입도 눈에 띄는 개혁방안이다. 검찰의 수직적 구조를 개선하고 검사의 신분보장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현재 검찰총장-고검장-검사장-검사 4단계로 구성된 검사의 직급체계를 2단계로 축소, 고검장·검사장 직급을 폐지했다. 그에 맞춰 검찰총장을 제외한 모든 검사의 보수 체계를 단일호봉제로 변경했다.

“편하죠, 내일 당장 그만두면”

이 정도면 가히 혁명적인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수십 년 동안 쌓인 과제들을 부임 1년도 안 돼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 내부의 반발도 만만찮다. 그 탓에 강 장관은 지난 10개월 동안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현재 개혁업무를 총괄하는 부서는 정책기획단. 여기에 최근 검찰 내·외부 인사 13명으로 구성된 ‘제도개선연구팀’이 장관 직속기구로 발족돼 인사·조직 개편안을 연구하고 있다.

“하는 데까지 하다 가야죠. 일 자체는 재미도 있어요. 검찰 개혁과 관련한 제도개선 방안이 시행되고 정착되기까지는 몇 년 걸릴 것 같아요. 적어도 정착할 때까지는 지켜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교정행정도 개선할 게 많고. 그래서 주변사람들에게 오래 있겠다고 했는데, 사실은 내일 그만둬도 좋거든요. 편하죠 뭐, 내일 당장 그만두면. 가장 고통스러운 게 새벽에 일어나는 거예요.”

-보통 몇 시에 일어나시는데요.

“아침 약속이 있으면 7시 반에 나서야 되니까.”

-원래 야행성이신가 보죠.

“예.”

-그러면 보통 일이 아니네요.

“보통 일이 아니에요, 진짜로. 가을 들어와 체력도 많이 떨어지고. 고민이에요. 잠 때문에.”

-잠이 최대 걸림돌인가요, 장관직 계속하는 데.

“예. 잠하고 식사. 음식을 많이 먹어야 하니까. 아침 회의가 많으니 꼭 먹게 되죠. 점심때도 회의 끝나면 먹어야 하고. 저녁때 회식하면 또 먹어야죠.”

-식사량을 조절하시면 되잖아요.

“그게 안 돼요. 음식을 앞에 두고 안 먹을 수가 없어요. 아무래도 이것 때문에 오래 못할 것 같아. 오래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는데, 오래하겠다고 공언했는데…. 어찌 보면 검찰 제도개혁은 이제 시작이거든요.”

-가장 큰 목표가 그것이군요, 검찰개혁.

“검찰개혁이 가장 중요하죠. 검찰이 제대로 돼야 나머지도 원활하게 돌아가죠. 2∼3년은 해야 어느 정도 체계가 잡힐 것 같아요. 검사들한테는 한 3년 하겠다고, 2006년까지 있겠다고 얘기했죠. 그런데 있고 싶다고 있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더라구, 와보니까.”

-우리도 이제는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하는 장관이 나올 때가 됐지요.

“내가 검사들에게 2006년까지 있겠다고 얘기한 것을 대선 출마와 연결시키기도 하더라구요. 2007년 12월에 대선 있으니 1년쯤 전에 장관 그만두고 대선 준비한다는 거지.”

-그때 가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사람 팔자는 하늘의 뜻에 맡기는 게 좋아요.”

강 장관은 “내일 당장 그만둔다 생각하면 너무 즐거워요” 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공직자 생활보다는 개인 생활이 훨씬 낫거든요. 놀아야죠. 놀 것 생각하면, 그만둬야죠.”


“언론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죠”

-몇 년 전 미국에서 한 장관이 아이들로부터 아빠 노릇에 충실해달라는 얘기를 듣고 곧바로 사표를 내 화제가 됐죠.

“장관직에 업무수행 이상의 의미는 두지 말아야 돼요. 거기다 자신의 퍼스낼러티를 실으면 안 된다는 거죠. 내일 당장 그만둘 수 있을 정도로 태도가 객관화돼야 해요. 내가 장관이 됐으니까 무조건 오래 해보고 싶다는 태도는 촌스러운 것 아닌가요? 아까 인기에 대한 부담이 없냐고 물었는데 인기나 평가는 국민의 몫이고 나는 나대로 일을 하면 그만이에요. 인기가 떨어지면 할 수 없지, 내가 왜 부담을 가져요. 일 못하면 인기 떨어질 거고, 그럼 그만둬야지. 환기미술관에 와 즐기는 건 내 일이지. 하지만 공직이란 건 내 일이 아니잖아요. 국민의 일을 대신하고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 일 못한다는 평이 나오면 빨리 그만둬야지,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하도록.”

최근 강 장관 관련 기사 가운데 화제가 된 것 중 하나가 민주당 추미애 의원과의 비교다. 강 장관이 나이와 사시기수로 1년 선배다.

-추미애 의원과 비교하는 기사를 보면 솔직히 기분이 어떠세요.

“아무 생각이 없어요. 뭐 언론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죠.(웃음)”

-기사거리 없으니까?

“글쎄, 언론 나름대로 사정이 있는 것 아니겠어요.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기사화되는 걸 보면.”

-자꾸 건드리니 추미애 의원 쪽에서 반응을 보이는 것 같던데요.

“총선 지나면 조용해질 거예요. (2004년) 2월15일 지나면. 2월15일이 총선에 출마하려는 공직자의 데드라인이거든. 그때 되면 안 나가는 게 확실해지니까 잠잠해지겠죠.(웃음) 어쩌려고들 그러는지 몰라, 내가 안 나가면. 그것 좀 물어보고 싶어요. 언론에선 어떻게 생각하는 거예요? 나갈 거라고 보고 있어요.?”

강 장관이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되물었다. 기자가 “언론의 희망사항일지도 모르겠다”고 하자 또다시 “언론 나름대로의 사정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냐”며 한참 웃었다.

-예전에 국민회의에서 영입하려고 한 것은 사실인가 보죠?

“거짓말은 아니죠. 근데 나 궁금해. 나 안 나가면 어떡할라 그래요.”

강 장관이 또 웃어제꼈다.

-말씀하시는 게 꼭 나갈 것 같네요.

“아니, 재미있어서. (내가 나간다는 얘기를) 너무 퍼뜨려놓아서. 안 나가면 어쩌려고 저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강 장관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안 나가면 안 나가는 대로 또 기사 만드는 거죠 뭐.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뭐 이렇게?”

-바람만 잡았다고.

“바람만 잡고….”

정계 소식통에 따르면, 열린우리당이 최근 서울 강남 모 지역을 대상으로 강 장관 출마를 전제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나라당 중진인 모 의원을 더블 스코어로 눌렀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들려주자 강 장관은 “우와, 진짜 인기가 있구나” 하고 즐거워했다.

“노는 게 꿈이야, 진짜로”

-열린우리당의 구애 공세가 대단할 것 같은데요.

“그렇지도 않아요. 하도 내가 시큰둥하니까. 이해를 하시죠, 제 성격을.”

-공식 제의는 없었나요.

“예. 괜히 그러는 거죠.”

강 장관의 제의로 차를 더 시켰다. 이번엔 기자가 샀다. 머리 스타일이 화제에 올랐다.

“파마머리 때문에 난리가 났었지요. 동네 미장원 갔다왔냐, 웬 아줌마냐 하며. 저는 미장원에 가면 따로 주문을 안 해요. 그냥 가만히 앉아 있으면 미용사가 알아서 해주거든요. 지난번엔 미용사가 한번 심하게 볶은 거지.”

-삶의 계획표라 할까, 나는 몇 살 때 뭘 하고 뭘 성취하고, 이런 계획표를 작성한 적이 있습니까.

“한번도 없었구요. 아무런 계획 없이 사는 사람이에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계획 세우면 얼마나 좋겠냐만. 여기서 이제 잘 해봐야지 하고 맘 먹으면 꼭 다른 데로 옮기게 되더라고요. 판사 시절 초기엔 갈등이 많았는데 10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방향을 잡았지요. 비로소 법률 전문가로서 기량도 쌓고 정진하겠다고 맘먹었는데 그때부터 가세가 기울어서 등 떠밀리다시피 개업을 하게 됐어요. 비참하게 개업한 거예요.”

1981년 사시에 합격한 강 장관은 2년 후 서울지법 남부지원 판사로 부임했다. 이듬해인 1984년 운동권 출신으로 출판업을 하는 김아무개씨와 결혼했다. 변호사 개업을 한 것은 1996년. 남편의 출판사가 부도난 것이 원인이었다. 두 사람은 2000년에 합의이혼했다.

“빚 때문에 허덕지덕 변호사 하다가 로펌으로 옮겨가 대표까지 맡았죠. 원래 제 성격이 사교적이지 못해요. 개인 변호사 시절엔 민변을 통해 인권 분야 일만 했을 뿐 거의 대외활동을 안 했죠. 그런데 로펌 대표가 되니 비즈니스 관계로 사람을 많이 만나야 했어요. 다보스포럼도 다니고 경제인들도 만나고 골프도 했죠. 2003년 들어와 이제 본격적으로 잘해보자고 맘먹고 영어도 시작하고 골프도 죽어라 배우고 있는데….”

-영어회화요?

“그래요, 영어회화. 해야만 하니까. 외국 손님 만날 때도 많고. 그런데 갑자기 장관으로 오게 된 거예요. 여기서 열심히 해봐야지 하면 꼭 옮기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지금 자리는 좀 다르죠. 언제 그만둘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니. 여기는 임기가 하루 이상 5년 미만이잖아요. 로펌 대표 할 때도 소원이 50살까지 돈 열심히 벌어 빚도 갚고 외국에 나가 공부도 하고 노는 거였어요. 노는 게 꿈이야, 진짜로. 지금도 이 꿈엔 변함이 없어요. 50살 이후엔 정말 다르게 살고 싶어요. 60, 70살 돼서 다른 생활 한다는 건 말이 안 되고요.”


“연애, 더 늦기 전에 해야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둔 게 있습니까.

“생각중이에요. 일단 직업은 안 가질 생각인데.”

강 장관은 혼잣말처럼 “생각중”이라고 되뇌었다.

-그러려면 돈을 엄청 벌어야 할 텐데요.

“어떻게든지 생활은 할 수 있으면서 노는 방법을 찾아야죠. 법률가말고 딴 것. 지금은 방향만 생각해둔 상태죠.”

-자유롭게 사는 것?

“일단 자유롭게 사는 것.”

-춤도 마음대로 추고.

“응. 맘대로 추고. 잘 아시네.”

-연애도 하시고.

“마다할 리는 없죠.”

강 장관이 크게 웃었다.

-때가 있잖아요.

“때가 있으니 더 늦기 전에. 50대에. 60대는 너무 늦잖아.”

강 장관의 대중적 인기가 높아지게 된 데는 국회의원들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의원들은 국정감사와 대정부질의 때 강 장관을 유난히 자주 야단치고 호되게 추궁함으로써 그녀의 존재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장관들이 본 업무 외에 시달리는 게 많죠. 특히 국회에 불려가는 게 큰 비중을 차지하죠?

“굉장히 많이 차지하죠.”

-지난번 국감 때 김기춘 의원이 강 장관께 퀴즈를 냈죠?

“초대 법무장관과 검찰총장 이름.”

-그때 어떠셨어요. 당황했을 법한데.

“당황했다기보다는 답을 모르니까.(웃음) 지금도 몰라요.”

-심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습니까.

“모르겠어요.(웃음)”

-그럼 “코미디야, 코미디”는?

“한심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때 (의원들끼리) 주고받은 말 자체가 정말 웃겼어요. 그래서 웃은 거예요. 말이 너무 웃겨서.”

2003년 11월14일 강 장관은 문제의 ‘코미디’ 발언 때문에 국회 법사위에 나와 의원들에게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잘못한 건 사과해야죠. 그런데 또 사과 너무 자주 한다고 (웃음) 법사위 의원 한 분이 야단치시던데요. 법사위 계신 분들은 남다르게 느껴져요. 묘하데요, 그게 참. 예결위 있다가 법사위 가면 꼭 고향에 온 기분이 들고. 의원들이 야단 치는 것, 다 일리가 있어요.”

-예를 들면요.

“대법관 자문회의 도중에 퇴장한 것 때문에 많이 혼났지요. 법사위에서 잘못한 게 없다고 대답했더니 다들 제가 잘못했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듣고 보니 제가 잘못한 것 같더라구요. 일종의 비판기능이죠, 견제기능이고. 굉장히 도움이 되죠, 업무 점검하는 데.”

-대체로 수긍하신다는 거죠?

“틀린 말 한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의례적인 사과가 아니고요?

“내가 잘못했다고 인정해서 사과한 거예요. ‘코미디야 코미디’도 내가 혼자 한 말이지만 그게 공개되면 실수가 되는 거잖아요. 거짓말로 사과한 적은 한번도 없어요.”

“왜 만날 나는 사과만 하냐고”

강 장관이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혼잣말처럼 말했다.

“근데 사과를 너무 자주 하는 건 문제네. 사과할 일이 많으면 안 되지 않나.(웃음) 이상하네. 거짓말로 사과한 적은 없는데, 웬 사과가 그리 많았지. 그럼 안 되잖아. 왜 맨날 나는 사과만 하냐고.”

-저는 장관께서 어떤 의도를 갖고 그러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요.

“어떤 의도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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