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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과 妃 그만둘 수 없는 세 가지 이유
 관리자  07-25 | VIEW : 1,985
KBS 「왕과 비」작가의 반론

王과 妃 그만둘 수 없는 세 가지 이유

●역사를 선악 구조의 단순 논리로 보는 건 유치한 발상. 역사 역시 인격체로 보고 접근하는 것이 역사학자의 정도다.
●수양대군은 미화되지 않았다. 인간의 탈을 쓰고 야수와도 같은 심정으로 권력에 접근하는 수양대군의 다면성을 그렸을 뿐이다.
●「왕과 비」는 3월에야 방송되는 사육신을 난도질한 적이 없다

안영배 〈동아일보 신동아부 기자 ojong@donga.com

「신 동아」 99년 2월호에 역사평론가 이덕일씨의 「KBS 왕과 비 걷어치워라」라는 기고문이 게재된 후 신동아 편집실과 KBS 역사드라마 제작진에 독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이후 이 드라마의 제작 방향이 핫 이슈로 떠오르자 각 언론들도 역사평론가 이덕일씨와 「왕과 비」의 작가 정하연씨를 인터뷰하는 등 양측의 팽팽한 주장을 소개했다.

이덕일씨는 「신동아」 2월호에서 ▲세조가 일으킨 계유정난을 왕권(王權)과 신권(臣權)의 대립으로 규정한 다음, 이 쿠데타의 성공을 왕권의 승리로 묘사한 자체가 작가의 잘못된 역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연장선상에서 세조의 집권에 대항한 사육신까지 오도될 수 있으며 ▲일선 역사교사들도 「왕과 비」가 학생들에게 가치관 혼란을 부추길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는 등의 내용으로 「왕과 비」를 비판했다. 이에 대해 드라마 작가 정하연씨는 이덕일씨가 『아직 드라마에 등장하지도 않은 사육신까지 잘못 그리고 있다는 식으로 비난하는 것은 작가에 대한 인신공격이자 명예훼손』이라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신동아」는 애초 이덕일씨의 기고문을 게재하면서 드라마 작가의 반론을 실을 예정이었다. 역사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논쟁의 장(場)으로 끌어들여 우리 역사에 대한 인식이 좀더 승화되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작가 정하연씨는 당초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를 신청했다가 「신동아」의 방침을 확인한 뒤 반론에 응했다. 정하연씨는 드라마 대본을 집필하느라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신동아」 기자와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자신의 반론을 제기했다. 인터뷰는 지난 2월 초순 서울 남산의 하얏트 호텔에서 있었다.

--「신동아」 2월호가 나간 후 마음이 많이 상하신 것으로 들었습니다. 애초 이 기고문은 건전한 학술토론의 장으로 유도한다는 뜻으로 게재한 것인데 다소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기고문을 읽어보니까 제가 역사에 대한 기본지식도 없는 무식한 작가라거나, 이 드라마가 그나마 시청률이 낮아 다행이라는 식으로 묘사돼 있는데, 그건 좀 지나쳤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외국 같으면 그 글 자체가 저에게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주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제가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모든 논쟁이 마찬가지겠지만, 자기 말이 옳고 상대방 것이 틀렸다고 주장할 때 감정적인 문제는 개입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한국적 풍토에서의 논쟁은 진 쪽이 죽게 되는 생사의 논쟁입니다. 저는 이덕일씨의 감정이 개입된듯 한 글에서 가슴에 칼이 꽂히는 섬뜩함을 느꼈습니다. 제가 드라마를 집필하면서 마음에 상처를 받을 정도로 죽을 죄를 저지르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계유정난은 왕권수호 쿠데타』

--자기 주장을 펴다 보니까 상대방에 대해 다소 과격한 표현을 한 것으로 비칠 수도 있겠습니다만, 논쟁의 본질은 「왕과 비」가 묘사한 계유정난에 대한 역사적 평가인 것 같습니다. 이덕일씨는 계유정난을 왕권을 찬탈하려는 수양대군의 쿠데타로 보았던 반면, 드라마에서는 이를 왕권을 지키기 위한 수양대권의 자구책으로 묘사했습니다. 실제로 정선생님은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요?

『단종을 포함한 왕실의 입장에서 볼 때 계유정난은 권신들로부터 왕권을 지키려던 친위 쿠데타입니다. 당시 김종서 같은 의정부 권신들이 인사권인 「황표정사(黃票政事;대신이 인사대상자의 이름에 황색 점을 찍어 국왕에게 올리면 왕이 그 위에 점을 더해 추인하는 제도)」를 장악하고 있었고, 임금에게 올리는 상소를 포함한 대소사를 직접 처리했습니다. 게다가 임금이 어리다는 이유로 「경연(經筵)」(임금이 신하들과 함께 학문을 토론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사를 논하는 자리)이나, 「윤대(輪對)」(신하들이 차례로 임금에게 정치에 대해 아뢰는 일), 「조회(朝會)」(모든 신하가 정전에 모여 임금에게 문안을 드리는 일)가 없었습니다. 임금을 대궐에 가둬 놓고 꼼짝 못하게 한 거죠.
이덕일씨는 의정부 정승들이 나중에 황표정사를 안평대군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에 당시 정국을 주도한 세력은 정승들이 아니라고 말했는데, 그건 황표정사가 아니라 「분경」입니다. 분경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인사청탁권입니다. 당시에 왕실의 어른들은 실권은 없었지만 체면치레로 「이 사람 하나 써줘라」 정도의 부탁을 허용한 것이 분경입니다. 그런데 문종이 죽고 난 후 단종 초기에 김종서가 분경을 금지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안평대군과 수양대군이 거칠게 항의를 했지요. 「분경을 왜 금했느냐」 「너희들이 대군들을 뭘로 아느냐」 하면서 충돌이 있자 김종서가 후에 분경 금지를 슬며시 철회해버리죠. 따라서 황표정사는 분명히 의정부 대신들이 행사한 것이고, 그것은 왕권을 위협할 정도의 신권이었습니다.
또 계유정난이 일어난 시점은 조선왕조가 건국된 지 60년밖에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아직 이씨 왕조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상태에서 문종이 죽고 어린 단종이 즉위했으니까 수양대군이 느낀 공포는 사실 굉장했을 것입니다. 고려 왕씨를 죽이고 정권을 잡았는데 만일 이것이 뒤집히면 이씨는 다 죽는 것 아닙니까?』

수양의 양면성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킨 뒤 단종을 귀양보내고 왕위에 오른 결과를 보면 계유정난을 왕권수호 행위라고 보기엔 좀 어려운 것 같은데요.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신동아」에 기고한 이덕일 씨의 저서를 보더라도 계유정난에는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 두 가지가 있다고 했어요. 이를테면 계유정난을 일으킨 수양대군이 왕위만 찬탈하지 않았으면 왕실의 수호자로서 충분히 평가받을 수 있는데, 왕위를 찬탈했기 때문에 계유정난 자체도 부당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건 따로따로 떼어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킨 것은 분명히 왕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고, 후에 왕위 찬탈을 한 것은 자신의 야욕 때문에 일으킨 별개의 사건이라고 저는 봅니다』

--매우 재미있는 해석이군요. 그렇다면 정선생님은 수양대군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요.

『저는 드라마에서 수양대군을 묘사하면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떠올렸습니다. 맥베스를 보면 그가 악인인가 선인인가를 떠나 우리 마음속에 매우 복잡한 심정을 일으키면서 연민의 대상으로 다가옵니다. 저는 작가로서 계유정난이 역사적으로 정당하냐 부당하냐 하는 문제보다는 계유정난의 와중에 수양대군은 과연 어떤 인간이었는지가 더 중요했던 거지요.
사실 수양대군을 소재로 다룬 드라마는 여럿 있었어요. 대부분 수양대군과 단종은 수동적으로 그려졌고, 대신 한명회 같은 권신들의 이야기가 주축으로 등장했습니다. 이 드라마는 그가 단순하고 수동적인 인간이 아니라 무대 중앙에서 주체적으로 사건을 만들어나가는 주동적인 인간으로 설정했습니다. 따라서 지금 제가 그려보는 역사 드라마에서는 수양대군이 허수아비처럼 한명회를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의로 계유정난을 일으키고, 왕위를 찬탈했으며, 사육신을 공격한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또 하나 수양이 자의에 의해 사건을 일으키는 과정에 그의 복합적이며 양면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다시 말해 수양에게는 선한 모습과 악한 모습이 동시에 있는 것이죠. 그런데 설령 수양대군이 권력욕에 취한 악인(惡人)이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악인이다」 하고 노골적으로 얘기하는 드라마는 삼류입니다. 이런 비교를 해보지요. 뉴스에서는 살인범을 있을 경우 살인범의 얼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으로 그만입니다. 그러나 드라마 속에서는 양의 탈을 쓰고 착한 것처럼 행세하면서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드라마 초반에 제일 흥미가 있었던 것은 단종과 수양이 저렇게 사이가 좋은데, 어떻게 삼촌이 조카의 왕위를 뺏을 수 있고 조카를 죽일 수 있겠느냐 하는 점이었습니다. 심지어 가까운 친구들도 「너 어떡하려고 그렇게 그리느냐」고 걱정했어요. 그러니까 좋은 드라마라는 건,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좋은 드라마라고 강변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저렇게 해서 어떻게 극적 반전이 될 수 있을까 하고 시청자로 하여금 호기심을 갖게 하고 상상을 부추기는 것입니다.
저는 이 구도에서 계유정난 때까지의 수양을, 자기 조카(단종)를 사랑하고 형님(문종)의 유지를 받들어서 왕권을 지키는 선한 모습으로 그렸습니다. 역사적 실체로서는 수양대군의 인간성이 그랬는지 그렇지 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유정난 당시의 수양대군은 비교적 정당했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와 황보인 등 정적을 제거한 다음의 수양대군은 조금 더 권력에 대한 탐욕을 갖게 됐다고 보았습니다. 이 과정에 수양은 조카로부터 왕위를 뺏느냐 안 뺏느냐는 문제로 드라마 속에서 수없이 고민하고 있어요. 그래서 수양대군은 자기를 미화하고 정당화하고 자기 명분을 내세우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정말 수양대군은 정당했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게 또한 드라마입니다』

--이번에 문제를 제기한 이덕일씨뿐만 아니라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왕과 비」가 지나치게 수양대군을 미화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이것 역시 작가가 의도적으로 노린 것인가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오르고 훈구대신이나 권신들이 왕권까지 위협하니까 당시 수양대군으로서는 어린 왕을 보호하기 위해 계유정난을 일으킨 명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수양의 선한 모습인데, 작가로서는 수양대군이 미화돼 있다는 비판에 대해 어떤 의미에서는 수양대군의 한 일면을 제 의도대로 잘 그려냈구나 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그 드라마 속에서도 수양대군은 자신이 겪는 고통, 갈등, 야망, 범죄의식 그런 것들을 수없이 고백하는 부분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 그런 건 간과해버리고 오로지 수양대군의 쿠데타만 정당화한 것처럼 썼다고 말하는 것은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수양에 대한 엄정한 평가

--여하간 드라마 「왕과 비」가 수양을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일로 언론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따지고 보면 작가의 의도가 성공한 거 아닌가요?

『그렇게 받아들여야 합니까?(웃음) 저는 사실 수양에게 엄정한 책임을 묻기 위해 드라마 초반기에 그의 주체적 움직임, 그리고 선한 모습을 강조했습니다. 이를테면 세인의 평처럼 세조(수양)를 미화한 것이죠.
그런데 드라마 초반기의 이런 장치가 세조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습니다. 이전의 역사드라마들을 보면 수양대군에게는 변명거리가 있었죠. 자신이 주체가 아니라 한명회에 의해서 계유정난을 했고, 공신들이 밀어붙이니까 사육신 사건이 일어났고, 세조 자신은 죽이려 하지 않았는데 주위에서 죽이라고 아우성치니까 동생인 금성대군이나 안평대군도 죽였고, 모두 이런 식으로 그려졌습니다. 그러나 이번 드라마는 수양이 주체입니다. 그가 교묘하게 공신들을 조정해서 왕위를 뺏고 안평대군과 금성대군을 죽인 것입니다.
그런 점으로 본다면 저는 수양대군을 지나치게 미화한 것이 아니고 수양대군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고 봐야 정당합니다. 사실 어떤 면에서 보면 수양은 선한 양의 탈을 쓰고 있다가 자기 본색을 드러낸 늑대인데, 단순히 수양대군을 미화했다고만 하니까 작가로서는 조금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고요』
작가 정하연씨는 「신동아」가 반론을 제의했을 때 처음에는 이를 거부했다. 반론이라는 것은 상대방과 논조가 다를 때 하는 것인데, 이덕일씨가 문제삼은 수양에 대한 평가가 자신의 의견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사육신 부분은 아직 방영되지 않았는데도 드라마가 사육신을 권력욕의 화신으로 난도질했다고 하니 어떻게 반론할 수가 있겠냐는 것. 그러는 와중에 각 중앙 일간지에서 「왕과 비」에 대한 비판이 잇따르자 작품에 대한 작가의 입장을 명확히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고 한다.

지적인 인간의 비극

--사육신 부분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나요?

『드라마는 지금 사육신을 붙잡아 고문하는 데까지 와 있습니다. 누군가 이런 얘기를 해요. 원래 수양대군이 나쁜 사람인 줄 알고 있었는데 드라마를 보고 나니까 수양대군이 보통 나쁜 사람이 아니다 해서 같이 웃은 적이 있습니다.
수양은 자기는 조카(단종)를 사랑하고, 자기 형제도 안 죽이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신하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게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결국 사육신들에 대해서도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데 왜 나를 안 믿어주느냐」 하는 식으로 회유합니다. 그런데도 사육신이 정권의 도덕성을 들고 나와서 단종 복위운동을 벌이니까 수양대군이 거의 광인처럼 살육하게 됩니다.
여기서 사육신에 대한 수양대군의 태도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수양대군의 비극은 그가 지적(知的) 인간이란 점입니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상 몇 안되는 지적인 임금 중의 하나가 수양입니다. 그는 세종 치하에서 세자 문종의 바로 밑자리에 있었습니다. 병약한 형님인 문종이 아파서 죽으면, 또 세종의 마음이 바뀌면 언제라도 자신이 왕이 된다는 기대, 그것은 달리 보면 언제 자신도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입니다. 그렇게 20년을 기다리며 세월을 보냈기 때문에 세상을 너무나 잘 알게 된 사람입니다.
사실 지적인 세조가 아니라면 보위를 찬탈한 뒤 사육신에게 그렇게까지 「아부」할 필요가 없었고, 종교를 찾아다니고, 자기가 왕위를 뺏은 것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냉정하게 얘기해 왕실에서 보면 단종이 혈통을 이어가든 수양대군이 혈통을 이어가든 모두 세종대왕의 혈통이기 때문에 별로 문제될 것도 없었습니다.
다만 주자학을 통치 이념으로 생각하는 선비들 입장에서 볼 때 수양의 집권이 부도덕한 겁니다. 수양도 바로 그 점 때문에 고민했고 사육신을 회유하려 했지요. 따라서 수양대군이 도덕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선악의 갈등구조를 이해하고 있는 매우 지적인 사람임은 분명합니다.
작가 개인으로서는 그런 수양대군을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봤고, 그러다 보니까 수양대군이 멋있고 근사한 말을 많이 한 걸로 나오게 됐습니다. 드라마를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이것 역시 수양을 지나치게 미화시키는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겠지만 자신을 합리화하려고 애쓰는 수양의 이면을 볼 필요가 있는 겁니다』

작가 정하연씨는 이외에도 수양의 인간적인 모습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가 수양 얘기를 하면서 서두에 맥베스를 꺼낸 것이 어느 정도 이해됐다. 그는 맥베스처럼 선악의 갈등구조를 아는 인간, 지적이기 때문에 심적인 고통을 느끼는 복합적인 인간인 수양에게 흠뻑 빠진 듯 보이기도 했다.

--세조의 입장에서가 아닌, 정선생님 입장에서 사육신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까? 정선생님은 계유정난과 그 이후에 벌어진 세조의 왕위 찬탈, 사육신 사건 등은 별개의 문제라고 밝히셨습니다만, 지금 사육신 사건이 어떻게 다뤄지는지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진정한 선비정신의 표본인 사육신이 드라마에서 왜곡될까봐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리던데요.

사육신 묘사에 대한 우려

『이 드라마에서 사육신 사건은 아주 예민한 부분입니다. 먼저 계유정난과 사육신에 대한 견해부터 정리하지요. 계유정난이 일어났을 때 사육신이 수양의 왕권에 대한 야심을 간파하고 저항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리고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으로 집권해 관직을 배치할 때 사육신들이 전부 관직에 순응했다는 것은, 물론 마음속으로 불복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지금으로 말하면 제도권 안에 들어왔다고 봅니다.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때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켜 황보인 김종서 같은 훈구 대신들의 관료주의를 타파한 것에 대해서는 신진 사대부들이 긍정적 혹은 묵시적 동의를 하지 않았는가 하고 생각합니다. 집현전 선비들 입장에서는 수양대군에게 의혹의 마음을 가질 수 있겠지만, 황표정사로 인사권을 남용하고 상소를 막아버리는 훈구대신들 역시 제일의 적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다가 수양대군이 막상 임금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집니다. 수양은 의정부서사제를 폐지하고 강력한 왕권강화책인 육조직계제를 시행합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총리제를 없애고 대통령이 막바로 장관을 통솔하는 정치를 하는 겁니다. 이건 수양대군이 내건 명분이 교묘하게 탈색되고 왜곡되는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사육신 중에 하위지가 육조직계제를 반대해 파동이 한 번 일어납니다. 이후 수양에 대한 전면 반대운동을 벌이게 되지요.
또 한 가지 유심히 봐야 할 것은 어찌됐건 사육신은 세조가 집권한 후 우대를 받았고 녹을 먹었는데, 그런 임금을 살해하려고 한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하는 지적입니다. 그런데 사육신이 그런 계획을 세운 것은 수양대군을 임금으로 안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은 사석에서 「수양대군 나으리」라고 부르지 「전하」라는 말을 안 씁니다. 또 당시 창덕궁으로 쫓겨가 있던 단종을 「상왕」이라고 부르지 않고 전하라고 불렀습니다. 사육신들은 왕위가 승계됐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양대군을 죽이는 것도 왕을 죽이는 것이 아니고 대군, 즉 왕자를 죽이는 행위였던 것이지요.
지금 제가 세조를 미화시켰다고 해서 비난받고 있지만, 저는 사육신을 충의열사로 봅니다. 세종대왕은 살아 있을 때 문종이 병약해 오랫동안 왕위에 있지 못할 걸 알았습니다. 만약 문종이 일찍 죽으면 11~12살 된 단종이 보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래서 세종은 집현전 학사들을 모아놓고 문종을 부탁하는 것이 아니라 단종을 잘 돌봐달라는 고명을 합니다. 고명이라는 건 임금이 죽기 직전 혹은 살아 있는 동안에 공식적으로 사관을 대동하고 유언을 남기는 겁니다. 내가 죽은 다음에 누구 누구 누구가 세자를 보호해라 하는 식으로 「고명대신」을 만들어주는 겁니다.
사육신이 단종복위운동을 강력하게 벌인 명분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렇게 원칙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린 사람들이 사육신입니다. 이들의 가치관은 오늘날에도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수대비 논란

--「왕과 비」를 보면 제목과 달리 왕의 얘기만 강조되지 비(妃)의 얘기는 별로 등장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왕의 얘기는 이쯤하고 비의 얘기는 어떻게 되는지요?

『이 드라마의 제목이 「왕과 비」인 것은 왕 이후에 비가 정치를 하고 그 이후에 또 왕이 정치를 하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역사의 인과응보를 그려보자는 뜻에서였습니다. 드라마 초반부는 왕, 즉 수양대군의 얘기이고, 후반은 인수대비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또 있을지도 모를 오해를 피하기 위해 앞으로 전개될 비의 이야기를 잠깐 언급해보겠습니다. 조선왕조 역사상 최초로 수렴청정을 한 여성이 수양대군의 부인인 정희왕후입니다. 그 뒤에는 또한 수양대군의 며느리인 수빈 한씨가―나중에 인수대비라고 합니다만―있는데 이 두 여인에 의해서 막후 정치가 시작됐습니다.
드라마 초반에 정희왕후는 자비스럽고 인정이 넘치는 여인으로 나오고, 수빈 한씨(인수대비)는 냉정하고 계산적인 성격으로 부각돼 있었지요. 지금 인수대비는 굉장히 나쁜 사람으로 그려집니다. 시청자들이 인수대비 채시라만 나오면 욕을 무지하게 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묘사했느냐 하면 극적 반전을 유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왕조실록을 보면 수양이 즉위하고 나서 수빈 한씨의 남편인 도원군이 세자 책봉을 받는데, 그가 갑자기 병을 얻어 죽고 맙니다. 인수대비는 자기 소원대로 세자비가 되고 나아가 왕비까지 되려고 하는 판인데, 하루 아침에 꿈이 망가져버립니다. 남편이 죽어버리자 그녀는 왕실에서 쫓겨나 어린 아들을 데리고 수양대군의 잠저로 돌아갑니다. 당돌하고 냉혹한 인수대비가 하루아침에 몰락하게 됐을 때 시청자들은 「거 참 속시원하다」 또는 「그러나 참 불쌍하다」 하고 느낍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사가(私家)로 돌아온 수빈 한씨를 시어머니인 정희왕후가 비로소 용서를 합니다.인간적 교분을 나누는 것이지요. 이것이 훗날 수빈 한씨가 한명회 등 공신과 대타협을 이뤄내서 자신의 둘째 아들을 보위에 세우는 원동력이 되지요』

--그렇다면 「왕과 비」는 시대가 어디까지 묘사되는 겁니까? 수빈 한씨, 그러니까 인수대비의 죽음에 이르서야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청상과부인 인수대비는 어린 아들을 왕위에 세우고 사사건건 간섭을 하게 되는데 특히 며느리 꼴을 못 봅니다. 그 유명한 폐비 윤씨의 죽음은 청상과부인 시어머니가 젊은 며느리에게 느끼는 일종의 투기가 원인이 된 셈이죠. 그 결과 연산군의 복수극이 이어지는 거지요. 이것은 수양대군에게서 시작된 인과응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사와 마찬가지로 역사는 끊임없이 순환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진행되는 것이 역사입니다. 현대사를 들여다보더라도 500년 전 역사나 1000년 전 역사나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현대에 접어들수록 다소 「복잡한 옷」을 걸칠 수는 있으나 그 기본 골격은 유사합니다. 그래서 역사로부터 배우라는 것이 아닐는지요』

역사는 살아 있는 생명체

작가 정하연씨는 마지막으로 역사와 역사 드라마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밝혔다.

『역사는 기록으로만 남겨진 고정장치가 아니고 살아 있는 생물체입니다. 그래서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편성되고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역사 드라마는 기록과 기록에서 빠진 것을 보충하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행위라고 봅니다. 그래서 드라마를 가지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증과 틀리다,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하고 얘기하는 것은 역사를 죽어 있는 물체로만 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마 속의 역사는 살아서 숨쉴 때 의미가 있습니다. 살아서 숨쉬기 때문에 오해가 있을 수 있고 자기 생각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 이덕일씨가 KBS 역사드라마가 시청자들에게 역사인식에 대한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혹시 국민들에게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주지 않을까 지적했는데 그 점은 제가 충분히 납득하고 있습니다만, 우리 시청자들을 바보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 수양대군이 나쁜 사람인데 좋은 사람으로 묘사했다고 해서 속아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 나름대로 수양대군의 저런 점은 좋고 저런 점은 나쁘다라고 판단하고 보기 때문에 드라마가 가능합니다. 다만 혹시라도 그런 판단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드라마에서 빠진 부분을 지적한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역사는 일면적 모습이 아닌, 여러 가지 측면으로 보아야 가치가 있습니다. 수양대군이 악인으로만 남아 있다면 그 역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사실 들춰낼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 역사 속에 있는 인물이나 많은 사건들이 항상 양면성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가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이 아닐까요』

--정선생님의 역사는 살아 있는 생물과 같다는 말씀에 동감합니다.

『그렇습니다. 500년 전 역사가 오늘도 내일도 그 자리에 죽어 있는 물체처럼 놓여 있다면 우리는 역사로부터 아무런 교훈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역사는 지금도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는 겁니다. 수양대군도, 단종도, 인수대비도, 한명회도 모두 우리 옆에 살아 있는 겁니다』

--오랜 시간 고맙습니다. 「왕과 비」가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으로 자리잡기를 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한 말씀 덧붙여 제가 지금까지 얘기한 것이 「왕과 비」를 걷어치우지 못하는 이유들인데, 어느 정도 용서와 납득과 이해가 되셨는지요?』

―(웃음) 제가 드라마를 꾸준히 보지 못했는데, 이제부터 끝까지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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