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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의 명재상 안영
 관리자  07-25 | VIEW : 2,535
춘추시대의 명재상 안영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재상 안영은 군주의 비위를 맞추기만 하는‘예스 맨’이 아니었다. 시시비비를 엄격히 가려 올바로 간언하는 재상이었다. 그러면서도 우회적인 방법으로 임금이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슬기를 발휘했다.

도광순 동방학연구소장·한양대 명예교수

춘 추시대, 인간의 양심과 도덕이 극도로 타락하고 약육강식적인 논리가 횡행했던 사회를 꼽을 때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역사의 한 무대다. 이때는 서울을 동쪽으로 옮긴 주(周)나라의 권위가 쇠퇴하고 유력 제후국이 패권을 추구하던 시기(BC 722~BC 403)로 중국 사회는 혼란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나 이런 사회에서도 도덕적 양심과 지성을 가진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제(齊)나라의 재상인 안영(晏)이다. 그의 덕에 대해서는 공자도 ‘논어’에서 찬양한 바 있다.
안영은 제나라 영공(靈公), 장공(莊公), 경공(景公) 등 3대의 군주에 걸쳐 명재상으로서 이름을 남겼다. 특히 범용(凡庸)한 군주였던 경공이 58년이나 제나라를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은 안영의 공을 빼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그의 행적은 ‘안자춘추(晏子春秋)’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잘 전해지고 있다.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은 저서 ‘사기’에다 안영을 위한 열전을 마련하여 그의 덕을 찬양했다.

“내가 그 당시에 살아 있었다면 그의 마부가 되기를 사양하지 않았겠다.”

한마디로 안영은 임금의 부족함과 그릇됨을 충성된 마음으로 간(諫)해 절대 권력자인 왕을 올바로 인도해준,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재상이었다.

이야기1: 부도덕한 임금 깨우치기

어느 때 혜성이 나타나서 불길한 징조를 보여주고 있었다. 경공은 재화(災禍)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 신관(神官)으로 하여금 빌도록 했다. 이때 안영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혜성이 나타나는 것은 이 세상의 부도덕한 자를 없애기 위함입니다. 만약 임금에게 부도덕함이 없을 것 같으면 임금이 기도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임금에게 부도덕함이 있을 것 같으면 기도드려 봤자 혜성은 꿈쩍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연의 기변(奇變)이 인간사의 불의·불합리를 반영하는 것으로 믿는 것이 이른바 ‘천인상관설(天人相關說)’인데 이는 중국의 전통적인 사상이다. 안영 역시 자연의 기변은 하늘이 인간에게 주는 경고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속에서 합리주의적인 사상을 견지했다. 즉 임금이 부도덕한 일을 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경고하기 위해 나타난 조짐이 자연의 기변이라면, 신에게 기도드리기 전에 먼저 자신의 부도덕한 처사를 바로잡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말함으로써 은연중에 임금의 도덕성을 경고한 것이다.

이야기2: 신벌과 중생의 저주

경공이 학질에 걸려서 1년이 넘도록 고생을 하고 있었다. 이웃나라에서 문병객도 많이 찾아왔다. 신하들이 말했다.

“전하께서는 선대보다도 훨씬 많은 제물을 신에게 바쳤습니다만 그래도 병이 낫지 않습니다. 그것은 신관들이 기도드리는 방식이 나쁘기 때문이니 신관(神官)을 처벌해 주십시오. 문병객에 대한 체면 문제도 있습니다.”

경공이 이 말을 듣고 안영에게 의논했다. 그러자 안영이 이렇게 말했다.

“진(晋)나라의 사신한테 들었는데, 진나라의 중신 범회(范會)는 명재상이었으므로 신관은 양심을 저버린 기도를 드리지 않아도 되었다고 합니다. 이번 일은 꼭 그와 같습니다. 현명한 군주를 섬기고 있는 신관은 기도할 때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므로 신(神)도 나라에 복을 내려주고 신관도 상응한 복을 받게 됩니다. 이에 반해서 폭군을 섬기고 있는 신관은 불쌍합니다. 군주가 하는 짓에 대해서 사실대로 말하면 군주의 노여움을 살 것이고 거짓말을 하면 신을 속이게 됩니다. 진퇴양난으로 적당히 기도드리지 않을 수 없게 되니 신도 불행을 내리고 신관도 응분의 불행을 당하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 경공은 구체적으로 어찌하면 좋은가를 물었다. 안영은 말했다.

“정치를 잘하십시오. 산림, 소택(沼澤), 바다의 소금, 기타 모든 자원이 있는 곳은 국유지로 돼 있어 전하가 파견한 감독관이 백성에게 노동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곳 저곳의 여러 관소(關所)에서는 직장에 가는 백성의 소지품에도 과세를 부과하고 있습니다. 또 귀족은 귀족들끼리 무리한 장사를 하며 세금을 마구 거둬들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큰 저택이 매일같이 세워지고 있고 향락은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 궁중의 귀부인들은 가게에서 물건을 강탈하고 있고 측근들은 시골에 가서 이권을 챙기기에 바쁩니다.
백성들은 남자건 여자건 모두 전하를 저주하고 있습니다. 만약 기도가 효력이 있는 것이라면 저주도 같은 효력이 있을 것입니다. 전하의 영토 내에 있는 사람의 수효를 생각해 보십시오. 몇 사람의 신관이 행하는 기도가 몇만 인, 몇억 인이 내뱉는 저주를 이겨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신관을 처벌하기보다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경공은 몇 가지 세금을 줄여서 백성들의 부담을 경감해 주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사찰과 교회가 수풀처럼 솟아 있다. 사람들이 그만큼 죄를 짓고 있다는 징표일까? 신은 과연 피해자의 원한을 돌보는 대신에 피해를 끼친 자의 기도와 헌금만 받아먹으면서 그들을 용서하고 축복할 수 있을 것인가? 죄지은 사람의 기도나 헌금은 신에게 별로 효력이 없지 않을까 느껴진다. 요는 선행을 하는 데 있을 것이다.

이야기3: 지혜로운 간언이란?

어느 때 경공의 애마가 별안간 죽어버렸다. 경공은 크게 화를 내 마굿간지기를 사형에 처하라고 명했다. 안영은 이를 못하게 말리고서는 경공에게 물었다.

“요순(堯舜) 임금이 사람을 죽인다면 누구부터 시작할 거라고 보십니까?”
“그거야… 과인(寡人)부터 하지.”

요순이 사람을 죽일 리가 없으므로 경공은 아찔한 마음에 이렇게 얼버무린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 아차하는 생각이 들어 마굿간지기를 사형 대신 하옥을 하라고 고쳐 명령했다. 이에 안영이 다시 말했다.

“이대로 하옥시키면 죄인은 자신의 죄를 모를 터이니 신이 그 죄목을 알게 해주겠습니다.”

경공의 허락을 얻은 안영은 이렇게 말했다.

“듣거라, 너는 죽을 죄를 세 가지나 범했다. 첫째는 말을 잘 돌볼 책임을 다하지 못했고, 둘째로 임금님이 사랑하는 말을 죽게 했고, 셋째로 하찮은 말 한 마리 때문에 임금으로 하여금 사람을 하나 죽이려 들게 했다. 사람들이 이 일을 알게 되면 임금님을 비난할 것이고, 또 제후들이 알게 되면 우리나라를 멸시할 것이다. 이와 같은 죄 때문에 너는 하옥되는 것이다.”

경공은 이 말이 자기에게 하는 말임을 알아차렸다.

“용서하라! 나의 덕을 해치지 말라.”

결국 마굿간지기의 하옥은 보류되었다. 안영은 임금의 비위를 맞추기만 하는 ‘예스 맨’이 아니라 시시비비를 엄격히 가려 올바로 간언하는 강직한 재상이었다. 그러면서도 어디까지나 우회적인 방법으로 말하며 임금으로 하여금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 뛰어난 간언술(諫言術)이 그에게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4: 공을 군주에게 돌리다

안영이 외국에 사신으로 가 있는 동안 안영의 제지를 받지 않게 되었음을 다행으로 생각한 경공은 새 궁궐을 짓기 시작했다. 때는 마침 추운 겨울철이었으므로 얼어죽는 사람이 많고 공사가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임금은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했다. 안영이 돌아오자 환영 연회가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 안영은 궁궐 공사를 문제 삼았다. 그는 임금에게 정중히 양해를 구한 후에 서민 사이에 요즘 유행하고 있는 노래 하나를 소개했다.

‘심한 추위에 몸이 언다/ 아! 어찌할거나!/ 임금 때문에 집안 사람들은 헤어졌네/ 아! 어찌할거나!’

그리고는 안영이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이 풍간(諷諫)을 못 알아차릴 만큼 둔한 경공은 아니었다.

“저 궁궐 때문이지? 잘 알았어. 즉각 중지시켜라!”

안영은 황공하여 머리를 조아리고서는, 그 자리를 물러나자마자 수레를 몰아 공사장으로 달려갔다.

“여러분, 잘 들으시오. 당신들에게도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집이 있지 않소? 우리 임금님께 궁궐 하나 지어드리는데 너무 늦지 않소? 서두르시오, 서둘러!”

일꾼들은 모두 불평하며 중얼거렸다.

“너무하기도 해라! 임금의 꽁무니 말을 타고 앉아서 재촉질을 하네, 흥.”

안영이 백성들로부터 크게 미움을 사고 있는 그때, 임금의 공사 중지 명령이 전달되었다. 일꾼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올리며 기뻐했다. 이렇게 해서 안영은 백성의 원망은 자기가 차지하고 공덕은 임금에게 돌렸던 것이다. 윗사람의 발목잡기만 능사로 하고 자기 잘못은 남에게 떠맡기되 공적은 모두 제가 차지하는 요즘의 정치판이나 관료 사회의 풍속과는 딴판이다. 공자는 이러한 안영을 칭찬하여 이렇게 말했다.

“명성은 임금에게 돌리고 재화는 자기에게 돌렸다.”

이야기5: 안영의 외교술

어느 때 안영은 초(楚)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그는 키가 작고 얼굴도 잘생기지 못했다. 초나라 임금이 그를 만나보자마자 느닷없이 말했다.

“제나라에는 사람이 없는가? 그대를 사신으로 보냈단 말인가?”

이것은 안영에 대한 모멸이거니와 제나라를 멸시하는 행위였다. 이것은 나라의 위신을 위해서라도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사람이 없다니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 서울 임치(臨淄)에는 사람이 넘쳐흐릅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그대 같은 사람을 보냈단 말이냐?”

“그건 지당한 말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사신을 파견할 때 현명한 자는 현명한 나라에,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나라에 보냅니다. 저는 가장 어리석은 자이기에 귀국에 오게 된 겁니다.”

이 말에 임금은 꿈쩍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주체성과 자존심을 팽개치고 자기 나라 이익을 몽땅 큰 나라에 양보하여 큰 나라의 비위 맞추기에만 급급한 오늘날의 외교관들을 살펴보게 하는 대목이다.

이야기6: 검소한 재상

안영은 검소한 생활에 자족했다. 그의 집은 천한 백성이 살고 있는 누추한 곳에 있었다. 어느 때 이를 딱하게 여긴 경공이 말했다.

“시장판 가까이에 사니 얼마나 시끄럽겠는가? 좋은 지역에 새 집을 하나 마련해 주마.”

“조상 대대로 사는 집일 뿐 아니라 제 형편으로는 오히려 과분합니다. 게다가 가게와 가까워 물건 사기가 편합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물가에 밝겠군?”

“그렇습니다.”

“지금 값이 비싼 것은 무엇인가?”

“끌신(踊)은 비싸고 보통 신은 값이 쌉니다.”

여기서 끌신이란 형벌을 받아 발에 상처가 난 죄수에게 신기는 신을 의미한다. 경공은 이 말을 듣고 곧 형벌을 줄이게 했다. 검소하고 결백하게 사는 사람이야말로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고, 성실한 사람이라야 자기의 마음을 미루어 남의 딱한 처지를 헤아릴 수 있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남을 용서할 수도 있고 남을 불행에서 구해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이라야만 참되게 세상을 다스릴 수 있고 훌륭한 정치가도 될 수 있다.

이야기7: 아첨하는 자를 경계하라

어느 날 경공이 사냥터에서 돌아와 누각에서 쉬고 있었다. 마침 그때 그가 좋아하는 신하 한 사람이 말을 달려 그리로 오고 있었다. 경공은 기쁜 얼굴로 안영에게 말했다.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지. 나하고 장단이 잘 맞는단 말이야!”

“아닙니다. 저 사람은 전하와 장단을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하의 단순한 동조자입니다.”

“장단을 맞추는 것과 동조는 무엇이 다른가?” “그것은 다릅니다. 장단을 맞춤은 조화를 뜻하는 것으로, 그것은 서로 다른 요소들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비유컨대 그것은 국물과 같은 것입니다. 물, 불, 초, 고기, 소금 등으로 생선을 끓여 과불급(過不及)이 없는 맛이 나게 한 것이 국물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전하가 긍정하는 것 속에 부정되어야 할 것이 있으면 그것을 검토해서 전하의 긍정을 완전한 것으로 하며, 거꾸로 전하가 부정하는 것 속에 긍정해야 할 것이 있으면 그것을 강조해 부당한 부정에서 전하를 구하는 것이 조화입니다. 그러나 저 사람은 그렇지 아니하고 단순히 동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하가 긍정하는 것을 긍정하고 부정하는 것을 부정하니 그것은 어디까지나 동조지 조화가 아닙니다. 물 위에 술을 부어도 아무도 마시지 않으며 거문고나 비파를 들고도 같은 줄을 뜯으면 아무도 들어주지 않습니다.”

윗사람에게 아첨하여 ‘지당한 말씀입니다’라는 말을 연발하면서 부화뇌동만 능사로 하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윗사람을 망치고 자기도 망할 수밖에 없다. 윗사람은 자기 말에 동조하는 자만 좋아하고 부정하거나 비판하는 자를 원수로 여겨 배격하니, 그것은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행위요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고 인간을 불성실하게 만드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공자 역시 조화를 강조했다.

“군자는 조화롭게 하되 부화뇌동하지 아니하고, 소인은 부화뇌동하되 조화롭게 하지 않는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조화는 바로 다양한 악기로 다양한 소리를 내는 오케스트라와 같은 것이다. 원활한 인간 관계, 평화로운 사회, 번영하는 국가는 이 조화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임금과 안영의 이러한 대화가 끝나고 술판이 벌어졌다. 그때 왕은 느닷없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죽음이란 게 없으면 인간은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그러자 안영은 말했다.

“죽음이 없을 것 같으면 행복한 것은 옛날 사람이지 지금의 전하는 아닐 것입니다. 지금 전하가 다스리고 있는 이 땅은 옛날에 상구(爽鳩)씨의 땅이었습니다. 그후 계칙(季則)의 땅이 되고, 봉백릉(逢伯陵)의 땅이 되고, 포고(蒲姑)의 땅이 되었다가, 그 훨씬 뒤에 와서 전하의 조상 땅이 된 것입니다. 인간에게 죽음이 없다면 상구씨의 행복이지 전하의 행복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이곳은 상구씨의 땅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일회적인 것이고 만인에게 공정한 것임을 참으로 깨닫게 될 때, 인간은 겸손·선량하고 무욕·무사(無私)하게 될 것이다. 생명을 가진 인간을 측은히 여기고 남을 사랑하는 인간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안영은 이러한 이치를 말해준 것이다.

이야기8: 권력이 바뀔때의 처신

제나라의 장공(莊公)과 동족으로 중신의 지위에 있던 최저(崔?)는 임금을 제쳐놓고 전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부족해서 마침내는 장공을 살해했다. 임금을 죽인 최저가 역적임은 말할 것도 없지만, 최저의 아내와 놀아난 장공의 과실도 컸다. 나라가 극도로 혼란한 가운데, 권력의 급격한 변동이 눈앞에 보이는 상황에 안영은 과연 어떠한 태도를 취했을까?
안영은 사건이 일어나자 지체없이 사건 현장인 최저의 집으로 달려갔다. 문이 굳게 닫혀 있어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어떤 사람이 앞으로 그가 취할 태도에 대해서 물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답했다.

“대체로 임금이나 관리가 모두 나라를 위해서 죽거나 나라를 위해서 망명한다면 나 역시 나라를 위해 죽거나 망명도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죽거나 망명하는 임금에 따라야 할 사람은 그 수족들이다. 나는 그렇게는 하지 않겠다. 오늘날 세상에는 임금을 받들고 있는 자가 임금을 죽이는 경우도 있다. 나는 죽지도 망명도 못 하겠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갈 수는 더욱 없다.”

대문이 열리자 그는 안으로 들어가서 장공의 시체를 무릎에 얹어놓고 통곡했다. 그는 항상 엄정한 자세로 재상의 역할과 임무를 다할 따름이었으므로 변동이 있을 때도 태연할 수가 있었다. 경공 16년, 신흥세력임을 자랑하는 진씨(陳氏) 일당이 근친 귀족인 난씨(鸞氏) 고씨(高氏)를 상대로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 소식을 듣자 곧 관복을 입고 궁궐로 달려가 성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두 진영에서 안영을 서로 자기 편으로 영입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진씨 편에 가담하겠습니까?”

“그 악당에게 무슨 매력이 있는가?”

“그러면 난씨, 고씨에게 붙을 것입니까?”

“이것들도 같은 무리다.”

“그렇다면 그만두고 떠나겠습니까?”

“임금의 위급함을 모른 체하고 떠나갈 수야 없지!”

권력의 중심이 이미 진씨에게 옮아가고 있는 시점인데도 그는 냉정히 처신했다. 그는 새로운 세력에 부화뇌동하여 빌붙지도 않았으며, 집권 세력에 맹목적으로 집착하지도 않았다. 그는 장공이 죽었을 때와 똑같이 자기가 섬기고 있는 경공에게 충성을 다하는 자세를 취했던 것이다. 그는 어느 쪽에 붙어야 뒷날 일신이 안전할까를 따질 필요가 없었다. 그는 ‘이 장 서면 이 장에 가고, 저 장 서면 저 장에 가는 장사꾼’ 같은 정상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정객이나 관료들의 영원한 귀감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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